나라 (2006): 동유럽의 '우크라이나'는 대체 어떤 나라인가나라 (2006): 동유럽의 '우크라이나'는 대체 어떤 나라인가

Posted at 2006. 11. 21. 02:54 | Posted in 2. 세상/2.2. 우크라이나 옛 얘기




지난 1991년 마지막 날에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USSR), 곧 '소련'(蘇聯)이 해체되고 열다섯 나라가 북유럽과 동유럽은 물론 중앙아시아에 세워졌는데, 우크라이나(UKRAINE)도 그 가운데 한 나라이다. 이와 같이 열다섯 나라가 한꺼번에 세상에 얼굴을 내밀어서인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를 우즈베키스탄(UZBEKISTAN)과 꽤나 헛갈려하시는 것 같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을 이뤘던 여러 공화국 가운데 하나였던 우크라이나(UKRAINE, УКРАЇНА)는 1990년 7월 16일에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에 대항해 주권을 선언하고, 그 이듬 해인 1991년 8월 24일에 우크라이나 국회에서 독립에 관한 법령을 통과시킨 다음, 또 이어서 몇 달 후인 1991년 12월 8일에는 벨라루스(BELARUS)의 수도인 민스크(Minsk)에서 똑같은 슬라브(Slav) 국가들인 러시아(RUSSIA), 벨라루스(BELARUS)와 함께 모여 앉아서 '독립 국가 연합'(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을 만들었으며, 1991년 12월 21일에는 카작스탄(KAZAKHSTAN)의 그 당시 수도였던 알마아타(Almaty)에서 발트해(Baltic Sea) 연안에 있는 세 나라인 에스토니아(ESTONIA), 라트비아(LATVIA), 리투아니아(LITHUANIA)와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 1879~1953)의 고국으로 코카서스 산맥(The Caucasus Mountains)에 있는 조지아(GEORGIA, 그루지아)가 빠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 USSR)에 소속되어 있던 나라들인 아르메니아(ARMENIA), 아제르바이잔(AZERBAIJAN), 카작스탄(KAZAKHSTAN),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투르크메니스탄(TURKMENISTAN), 타지키스탄(TAJIKISTAN), 키르기즈스탄(KYRGYZSTAN), 몰도바(MOLDOVA) 등과 함께 '알마아타 선언'을 발표하면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서 '독립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으로 이름을 바꾼 소련을 탈퇴하였다. 이 일은 1991년 12월말에 당시 소련의 수장이었던 고르바쵸프(Mikhail Sergeyvich Gorbachev) 대통령이 사임하면서 끝났다(헬무트 알트리히터(Helmut Altrichter), 「소련 소사: 1917~1991」, 최 대희 번역, 창작과 비평사, 1997, 183~215.). 이것이 '철의 장막' 곧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독립소비에트공화국연방)의 돌이킬 수 없는 분명한 해체이자 사천팔백 만 명의 슬라브족 사람들이 살고있는 큰 나라인 '우크라이나'의 확실한 독립이다.


그렇게 하여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은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지고, 북유럽의 발트해 연안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동유럽(Eastern Europe)에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몰도바가, 흑해(Black Sea)와 카스피해(Caspian Sea) 사이에 솟아 있는 코카서스(카프카즈) 산맥 남쪽에 조지아(그루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넓은 중앙 아시아 대지에 카작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 같은 나라들이 세워졌다. 그리고 앞서 말한 나라들의 영토를 뺀 그 나머지 예전의 소련 땅에는 소련의 역사를 잇는 나라로 러시아(RUSSIA)가 세워졌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나라들은 동쪽에서부터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반대 쪽으로 러시아(RUSSIA), 벨라루스(BELARUS), 폴란드(POLAND), 슬로바키아(SLOVAKIA), 헝가리(HUNGARY), 루마니아(ROMANIA), 몰도바(MOLDOVA) 같은 나라들이고, 아래로는 흑해(Black Sea)와 아조프해(Sea of Azov)가 있다. 그러므로 우크라이나는 동부 유럽에 있는 국가이며,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 국토의 대부분이 아시아에 있는 소련, 곧 러시아를 제외한 실제적인 유럽에서 넓은 영토를 갖고 있었던 프랑스(FRANCE)나 스페인(SPAIN), 스웨덴(SWEDEN)보다 그 땅이 넓다. 우크라이나 영토는 우리 대한민국의 여섯 배,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세 배 정도 영토의 나라다.



 

우크라이나는 슬로바키아에서 시작되어 우크라이나의 서부를 거친 뒤 루마니아를 관통하는 카르파티아 산맥(The Carpathian Mountains), 세계적인 석탄 산지인 도네쯔크(Donetsk) 지방의 구릉지대, 그리고 이름난 휴양지이자 남한과 북한의 국경선에 영향을 미친 얄타 회담의 개최지였던 얄타(Yalta)가 있는 흑해 연안의 크르임(Crimea) 반도의 산악 지역을 뺀 국토의 거의 전부가 비옥한 검은 흙인 체르노젬(Chernozem)이 깔려 있는 평원이어서 세계에서 이름난 밀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예전의 소련 시절에 2억 5천여 만명의 소련 사람들이 먹었던 밀이 거의 다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되었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또 우크라이나는 광물 자원도 풍부하다 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긴 강으로 알려져 있는 두 강, 곧 러시아의 볼가강(Volga River)과 유럽 여러 나라를 흘러 흑해로 유입되는 다뉴브강(Danube River) 다음으로 긴 강인 드니프로강(Dnipro River)이 러시아의 스몰롄스크(Smolensk) 구릉에서 시작하여서 벨라루스(BELARUS)를 지나서 우크라이나의 한복판을 서쪽과 동쪽으로 갈라놓으면서 흑해(Black Sea)로 흐르기에 우크라이나는 수자원도 풍부하다.



 


그렇지만 지난 1986년 4월 26일(토요일) 새벽 1시 23분에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끄이브(키예프)에서 북쪽으로 100 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국경 부근에 있는 초르노브일(Чорнобиль[초르노브일; 우크라이나어], Чернобыль[체르노브일; 러시아어], Chornobyl or Chernobyl[초르노빌/체르노빌; 영어])이란 곳에서 발생한 원자력 발전소 제 4호기 폭발 사고로 인하여 우크라이나는 땅과 물이 오염되어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농수산물을 마음껏 먹을 수 없고 기형아가 여전히 태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끄이브(키예프) 시민들은 방사능을 잘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버섯이나 딸기 같은 농산물은 잘 먹지 않고, 또 방사능에 오염된 드니프로 강에서 잡히는 민물 고기도 잘 먹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대부분 지역에서 석회질 물이 나오기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식수로 쓸 좋은 물을 번거롭게 늘 사서 먹어야만 하는 불편함도 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에는 수도인 끄이브(키예프)에 이백육십만 명의 사람들이, 두번째로 큰 동부 도시인 하르끼브(Kharkiv)에 백오십만 명의 사람들이, 드니프로뻬트로브스크(Dnipropetrovsk)에 백십만 명의 사람들이, 오데싸(Odesa)에 백만 명의 사람들이, 도네쯔크(Donetsk)에 역시 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뽀리쟈(Zaporizhzhya)에 팔십만 명의 사람들이, 르비브(Lviv)에 칠십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을 비롯해서 그밖의 여러 도시와 지방에서 그 나머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 총 인구수는 사천팔백만 명쯤 된다. 그러므로 우크라이나는 인구수로만 보더라도 유럽의 나라들 가운데 팔천만 명쯤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독일(GERMANY), 오천칠백만 명쯤의 사람이 사는 이탈리아(ITALY), 프랑스(FRANCE), 영국(UNITED KINGDOM), 사천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사는 스페인(SPAIN)이나 폴란드(POLAND) 같은 유럽의 큰 나라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민족성이 대체로 친절하고 따뜻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로 말하며, 3월부터 5월까지의 봄, 6월부터 8월까지의 건조하고 무더운 여름, 9월부터 11월까지의 가을, 12월부터 2월까지의 몹시 춥고 눈이 많이 오는 겨울로 구분되는 사계절 속에서 살아간다. 인종의 구분으로 보자면 우크라이나인들은 폴란드인, 벨라루스인, 러시아인, 체크인, 슬로바키아인, 세르비아인, 불가리아인 등과 같은 슬라브(Slav) 민족이며, 언어의 구분으로 보자면 우크라이나의 국어인 우크라이나어(Ukrainian, Українська мова[우크라인스까 모바])나 우크라이나의 동부 지방에서 사는 사람들과 노년층에서 아직도 쓰이는 러시아어(Russian)는 인도-유럽어(Indo-European Languages) 가운데 동부 슬라브어(Eastern Slavic Group)에 속한 격변화가 심한 굴절어(屈折語, An Inflectional Language)로 키릴[씨릴] 문자(Cyrillic Alphabet)로 기록한다(John H. Koo and Robert N. Clair, Languages of the World, Seoul: Hanshin Publishing Co., 1992, 43-51.).

 


  


우리들은 보통 우크라이나를 세계적인 밀 생산 국가나 도네쯔크 탄전이 있는 세계적인 탄전 국가 중의 하나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옛 소련 시절에 소련 전체 산업의 25 퍼센트, 군수 산업의 40 퍼센트를 차지했던 나라가 바로 동부 유럽의 거대한 나라, 우크라이나이다(http://www.chosun.com/international/news/200502/200502160224.html). 오늘날 우크라이나(UKRAINE)는 원자핵, 우주 산업, 항공기 생산, 유전자 공학, 인조 다이아몬드 소재, 철광석 생산 분야 등에서 그 이름을 세계에 드러내고 있다.



2001년에, 영국의 경제전문가인 짐 오닐(Jim O'Neil)이 세계적인 투자 은행인 미국(USA)의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에서 세계 인구의 40여 퍼센트, 세계 면적의 30여 퍼센트를 차지하는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N FEDERATION), 인도(INDIA), 중국(CHINA)이 2050년 경부터는 미국이나 일본(JAPAN)과 함께 세계의 경제를 이끌어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주장을 쉽게 하기 위해 그 나라들의 영문 첫글자들을 따서 '벽돌들'(Bricks)이란 말을 연상시키는 '브릭스'(BRICs; BRIC Economic Theory)라고 표현하였는데, 그 논의에 우크라이나(UKRAINE)도 넣어서 '브리쿠스'(BRICUs)라고 해야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분은 아마 미국 브라운 대학교(Brown University)의 슬라브어학 박사로 고려대학교에서 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시다 노 무현 정부인 2006년 2월에 우크라이나 주재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大使, Ambassador)로 오신 허 승철 박사(許勝澈, Seung-Chul Hur, Ph. D.)님이실 것 같은데, 그는 "우크라이나는 광활한 국토와 인구 5천만명의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또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물류와 에너지 자원의 주요 통로이다. 특히 첨단 과학기술과 뛰어난 인적 자원, 우수한 문화적 유산을 갖고 있다. 이밖에도 우크라이나는 강대국 틈에서 균형 외교와 동서 지역 갈등 해소 등 한국과 유사한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어 우리로서도 배울 점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연합뉴스(http://www.yonhapnews.co.kr) 러시아 주재 김 병호 특파원과의 2006년 3월 23일자 서면 인터뷰에서 주장하셨다.

 



우크라이나 화폐는 '흐르이브냐' (гривня [우크라이나어], Hryvnya or Hryvnia [영어]; '흐리브냐'라고 해도 되겠지만 '그리브나' [러시아어]라고 하면 안 됨)이고, 우리 원화와 비교할 때는 1 흐르이브냐(오드냐 흐르이브냐)가 150원 정도 된다.  


 



서기(AD) 9세기 말엽부터 13세기 중엽까지 지금의 우크라이나(UKRAINE, УКРАЇНА)의 수도인 끄이브(키예프; Kyiv or Kiev)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흑해(Black Sea) 연안에서부터 북쪽으로는 발트해(Baltic Sea) 연안의 지금의 러시아(RUSSIA)의 상뜨 뻬떼르부르크(Saint Peterburg)와 내륙 지방인 야로슬라블(Yaroslavl)까지를 그 세력권 안에 두었던 '키예프 루시'로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알고 있는 끄이브 루스 (КИЇВСЬКА РУСЬ, KYIVAN [KIEVAN] RUS; http://en.wikipedia.org/wiki/Kievan_Rus') 공국이 우크라이나 역사의 실제적인 시작이다. 그 '끄이브 루스'는 지금의 오데싸(Odesa) 연안과 크림(Crimea) 반도에 들어와 있던 그리스(GREECE) 문화의 영향을 받아 비잔틴 제국(THE BYZANTINE EMPIRE)의 문명과 비잔틴 정교회(The Byzantine Church)를 받아들여 문명국으로 발전하였다. 우크라이나의 기독교 수용에 대해 더 자세히 기록하자면, 끄이브 루스의 스뱌또슬라브 왕자 1 세(Prince Sviatoslav; http://en.wikipedia.org/wiki/Sviatoslav_I_of_Kiev)가 10세기 중반에 크르임(크림; Crimea) 반도를 점령하여 끄이브 루스의 영토로 삼고, 주후 988년 7월 18일에 그 크르임의 쎄바스또뽈(Sevastopol)에 있는 헤르쏘네스(Chersonesos)에서 끄이브 루스의 볼로드이므이르 대공(Volodymyr Great; http://en.wikipedia.org/wiki/Vladimir_the_Great)이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끄이브 루스의 수도였던 끄이브(키예프)로 돌아와 우상들을 불사르거나 강물에 버리고 백성들에게도 드니프로 강에서 집단적으로 세례를 받게 한다. 이것이 우크라이나(UKRAINE), 벨라루스(BELARUS), 러시아(RUSSIA) 동방 정교회(Orthodox Churches in Eastern Slavic Countries)의 시작인 것이다.

 

 




그 무렵 지금의 우크라이나 서쪽에 갈리치야·볼리냐 공국, 지금의 모스크바 서쪽에 노브고로트 공국, 지금의 모스크바 북쪽에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이 생겨나게 되어 끄이브 루스(키예프 루스)는 그 공국들과 주도권을 놓고 다투게까지 되었으며, 결국 13세기에 몽골(MONGOLIA)의 침입을 받아서 파괴되고 만다. 또 서기 11세기 후반부터 13세기 후반까지 있었던 십자군 원정(The Crusade)으로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로 넘어감에 따라 끄이브 루스는 다시 재기하지 못 했다. 그리하여 끄이브 루스(키예프 루시)의 끄이브(키예프)에 있었던 동방 정교회의 대주교구(Πατριάρχης; Patriarch)가 13세기 말에 오늘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Vladimir)로 14세기 초에는 모스크바(Moscow)로 옮겨가게 되어 모스크바가 동방교회(Orthodox Church)의 어머니라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북쪽의 노브고로트 공국(Новгородская Республика)과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Владимиро-Суздальское Княжество)은 러시아(РОССИЯ)로 발전하였고, 우리가 '갈리치야·볼리냐 공국'으로 부르는 카르파티아 산맥 부근인 우크라이나 서부에 세워졌던 '할르이쯔·볼른 공국'(Галицько-Волинська Держава; Kingdom of Galiccia-Volhynia)은 우크라이나(УКРАЇНА)의 역사를 이어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할르이쯔·볼른 공국'도 얼마 안 되어서 라틴 기독교 국가였던 리투아니아(LITHUANIA)와 폴란드(POLAND)의 지배를 받는다.

그렇게 해서 폴란드의 차별적인 대우와 폭정 아래 놓이게 된 우크라이나인들은 마침내 1648년에, 폴란드인들의 폭정에 대항해 1489년 경부터 자신들의 직업을 버리고서 자뽀리쟈(Запоріжжя) 지역의 드니프로 강변에서 민주적인 자치체를 구성해 살면서 우크라이나 땅을 지키던 무기를 든 자유주의자들인 꼬자크(Cossack, Козак)들의 수장인 보흐단 흐멜느이쯔끄이(Гетьман Богдан ХМЕЛЬНИЦЬКИЙ, 1596-1657)를 중심으로 반 폴란드 봉기를 일으켜 폴란드와 전쟁을 치르며 승리하여 평화협정을 끌어내게 된다. 그러나 계속된 전쟁에 꼬자크들의 숫자도 줄어들어 결국 1654년 1월에 그 꼬자끄들은 북쪽에서 모스크바가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오늘날 우크라이나 끄이브 주의 뻬레야슬라브 흐멜느이쯔끄이(Pereyaslav Khmelnytskyi), 그 당시 이름으로 뻬레야슬라브(Pereyaslav)에서 '뻬레야슬라브 조약' (http://en.wikipedia.org/wiki/Treaty_of_Pereyaslav)을 러시아와 맺는다. 그 내용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군주를 인정하는 대신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의가 없는 러시아(RUSSIA)는 그 뻬레야슬라브 조약을 이행하지 않아서 우크라이나의 국가적인 성장은 없었다. 


그리고 14세기부터 폴란드(POLAND)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카르파티아 산맥 부근의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도 1772년에 그 당시의 강대국들이었던 프로이센(Preußen; Prussia),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해 이루어진 제 1차 폴란드 분할로 오스트리아(AUSTRIA)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가 1914년에 발생한 제 1차 세계 대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EMPIRE OF AUSTRIA-HUNGARY; http://en.wikipedia.org/wiki/Austria-Hungary)의 몰락 등을 거쳐서 다시 폴란드의 땅이 되었고 제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결국 소련에 속한다(홍 석우, "우크라이나의 종교와 민족주의", 「소련과 동유럽의 종교와 민족주의」,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1996, 85~108., 임 영상, "러시아 민족과 러시아 정교회",「소련과 동유럽의 종교와 민족주의」,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1996, 31-32.).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후인 1920년에 서부 우크라이나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부터, 동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하여 하나의 우크라이나로 서게 되지만 1922년에 곧장 서부는 폴란드에, 동부는 러시아에 편입된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마침내 소련(USSR)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소련에 속하게 된 우크라이나의 생존은 결코 순탄하지 않아서 러시아인들의 무시와 차별을 당해야 했는데 가장 극심했던 때는 소련의 집단농장 체제를 반대하다가 1932년부터 1933년에 스탈린 정부의 고의적인 곡식 수탈로 인한 우크라이나인 집단 사망이었다. 그래서 팔백여만명이나 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죽었다. 이는 기근을 가장한 소련 당국의 우크라이나인 말살 정책(Genocide Famine)으로 유엔(UN)이나 유럽연합(EU)은 집단학살로 규정했다("우크라이나 역사 연표", UKRAINE, 서울: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2000년 8월 발행.).





그런데 처음에 이 세상을 만드셨고 아담 때문에 타락한 이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해 내신 창조주이자 섭리주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의 나라를 이루시려고 세상의 나라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셔서 자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아 알도록 하시는 그 경륜에 따라(구약성경, 다니엘 5: 21; 신약성경, 사도행전 17: 26~27), 철의 장막으로 빗장을 걸어잠궜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을 1991년에 흩으시고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열 다섯 나라에 자유를 선물하셨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 하도다."(사도행전 17: 26-27). 그러므로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으며, 온 세계 여러 나라의 통치자들과 그 백성들의 생명도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의미가 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신약성경, 요한계시록 11: 15)는 말씀과,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요한계시록 21: 22-27)는 말씀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이루신 구원을 완성하시려고 다시 오시는 날에 이뤄질 것이니 말이다. 그 뿐 아니라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신약 성경, 로마서 9: 27-28)는 말씀도 우리 인생들의 손 닿는 곳에 엄연히 놓여있으니 말이다.



거주 이전과 여행의 자유를 얻게 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오늘날 수도인 끄이브(키예프) 인근의 보르이스삘 공항(Boryspil/Borispil International Airport)을 비롯한 몇 개의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유럽의 나라로 그리 어렵지 않게 드나들고 있고, 체르니히브(Chernihiv), 루한스크(Luhansk), 하르끼브(Kharkiv), 르비브(Lviv), 우즈호로드(Uzhhorod), 체르니브찌(Chernivtsi) 같은 도시들을 통해 기차나 자동차로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유럽의 나라들을 다녀오고 있으며, 국제 항구인 오데싸(Odesa) 같은 흑해(Black Sea) 연안의 몇몇 항구에서 배를 타고 다른 유럽 나라들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외국인인 우리나라 국민도 이 방법들 가운데 하나를 택해 우크라이나를 드나들고 있는데, 허 승철(許勝澈, Seung-Chul Hur) 대사님이 일하실 때인 지난 2006년에 우리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의 노 무현 정부와 우크라이나(UKRAINE, УКРАЇНА)의 빅또르 유시첸꼬(Viktor Yushchenko) 정부가 합의해 3개월 이내의 관광 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는 우리 한국인들은 2006년 6월 24일부터 입국허가서인 비자(VISA)를 여권(Passport)에 받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들어와서 관광하다가 가실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아열대성 기후나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는 남부 크림 반도를 제외한 전국에 대륙성 기후가 나타나고 있어서, 하루에도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심하고 겨울에는 아주 춥고 여름에는 아주 덥다. 그러므로 우크라이나를 방문하기에 따로 좋은 계절을 택하기는 쉽지 않다. 그 말을 거꾸로 하면 어느 계절에 우크라이나를 방문해도 묘미가 있다는 말이다. 겨울이 무척 춥지만 속에 털이 있는 구두나 부츠를 신고 바람이 통하지 않는 두툼한 외투를 입고 머리를 보호할 따뜻한 모자를 쓰고 거리에 나서면 그런대로 견딜 만하고, 여름이 매우 덥지만 시원한 옷을 입고 모자나 선글라스로 눈을 보호하고 거리에 나서면 공기 가운데 습기가 적어서 역시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그러므로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몇 달 동안이나 덮고 있는 동화같은 세상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을 만나보고 싶다면 겨울에 우크라이나를 방문해서 기차 여행을 하면 좋을 것이고, 해바라기를 비롯한 많은 꽃들이 얼굴을 내밀고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들판에서 우크라이나어로 말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만나고 싶다면 여름이나 가을에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면 좋을 것이다. 다만, 겨울내 쌓여있던 눈이 녹으면서 거리가 질퍽거리게 되는 3월은 여행하기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과 중앙 난방이 꺼지는 4월은 잠자리가 좀 쌀쌀하다는 것은 기억하시고 말이다.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를 몇 주 동안 잠시 여행한다는 것과 우크라이나(UKRAINE)에서 계속 산다는 것은 결코 똑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은 꼭 깊이 기억하시기 바란다.



우크라이나를 1년 내내 눈이 오는 나라로 알고 계신 분들을 위하여 우크라이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해당하는 각 달의 이름을 설명하련다. 우크라이나어의 열 두 달의 이름은 그 달에 해당하는 특징적인 단어를 써서 표현하였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어로 각 달의 이름을 알게 되면 우크라이나에서 각 달마다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우크라이나(Україна)는 사계절이 있는데, 봄(весна)은 베레젠(березень; 3월), 크비뗀(квітень; 4월), 트라벤(травень; 5월)으로 석 달이고, 여름(літо)은 체르벤(червень; 6월), 르이뻰(липень; 7월), 쎄르뻰(серпень; 8월)으로 석 달이며, 가을(осінь)도 베레쎈(вересень; 9월), 죱뗀(жовтень; 10월), 르이스또빠드(листопад; 11월)로 석 달이며, 겨울(зима)도 흐루덴(грудень; 12월), 씨첸(січень; 1월), 류뜨이(лютий; 2월)로 석 달이다. 우크라이나는 사계절이 있는 나라이다. 






우크라이나어로 3월을 베레젠(березень)이라고 하는 것은 3월에 흰 자작나무인 베레자(береза[베레자; 우크라이나어], берёза[비료자; 러시아어], birch[버취; 영어]) 나무에 꽃망울이 피기 때문이다. 4월을 크비뗀(квітень)이라고 하는 것은 4월에 여러가지 꽃들(квітки)이 우크라이나 온 강산에 만발하기 때문이다. 5월을 트라벤(травень)이라고 하는 것은 5월이 되면 4월의 꽃들이 지고 나뭇가지에서 초록색 잎들이 돋아나고 땅에서는 많은 초록색 풀(трава)이 돋아나 세상을 온통 푸르게 하기 때문이다. 6월을 체르벤(червень)이라고 하는 것은 6월이 되면 체리(черешня[체레쉬냐; 우크라이나어], cherry[체리; 영어])를 비롯한 많은 과일 열매들이 빨갛게(червоний) 익어가기 때문이다. 7월을 르이뻰(липень)이라고 하는 것은 7월이 되면 보리수 종류의 참피나무인 르이빠(липа[르이빠; 우크라이나어], linden[린덴; 영어]) 나무에 꽃이 피어 향긋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8월을 쎄르뻰(серпень)이라고 하는 것은 8월에는 우크라이나의 조상들이 낫(sickle) 곧 쎄르프(серп)를 가지고 밀을 수확했기 때문이다. 9월을 베레쎈(вересень)이라고 하는 것은 9월에는 들판이나 숲에 보라색 베레스(верес[우크라이나어], heath[영어]) 꽃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10월을 죱뗀(жовтень)이라고 하는 것은 10월이 되면 나무들이 노랗게 단풍이 들어서 온 세상이 노랗게(жовтий) 변하기 때문이다. 11월을 르이스또빠드(листопад)라고 하는 것은 11월은 나뭇잎이 떨어지는 낙엽(листопад)의 달이기 때문이다. 12월을 흐루덴(грудень)이라고 하는 것은 12월이 되면 땅의 물기와 흙이 한 덩어리(грудки)로 뭉쳐져 땅이 마침내 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1월을 씨첸(січень)이라고 하는 것은 1월의 날씨가 마치 매를 맞는 것처럼(сікти) 살을 에도록 춥기 때문이다. 맨 마지막으로 2월을 우크라이나어로 류뜨이(лютий)라고 하는 것은 그 2월이 우크라이나의 열두 달 가운데서 가장 추운(лютий) 달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사계(四季)이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집에서 살며 무엇을 먹을까? 아마도 이런 것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지! 여느 나라처럼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옷은 서양식으로 다 입는다. 특별한 날에나 전통복을 가끔 입는다. 사는 집은 예전 같은 전통 가옥이 아니라 아파트 같은 현대식 가옥이다. 그러므로 옷차림이나 주택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음식은 여전히 전통적인 우크라이나 방식을 따르고 있다. 도시화 된 사회에서 바쁘게 살다 보니 충실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우크라이나에 서구식 음식 체인점이나 막도날드가 들어온 지가 오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종류도 많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통 식단은 빵과 수프가 주식이다. 그리고 샐러드가 특별한 날에는 꼭 나온다. 우크라이나의 음식 문화를 전부는 모르겠지만 결코 빈약한 편은 아닌 듯하다.

 

 




아래에 우크라이나(UKRAINE, УКРАЇНА)에 대한 영상을 몇 개 소개해 드린다. 다큐멘터리, 여행기, 쇼, 노래, 대담, 춤 같은 것을 담은 영상들인데, 유튜브(http://youtube.com)의 것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열려있는 것들을 가져와서 공유한다. 먼저 사진을 모은 영상을 소개한다(http://youtu.be/QlZ8o76Rer0). 우크라이나 사진들을 동영상으로 엮어 영어로 역사를 설명하는 음성을 넣으신 어떤 분의 유튜브 영상이다.





다음으로 어떤 미국인이 자신의 아내의 고국인 우크라이나를 다녀가며 찍었던 3분 정도 되는 영상을 소개한다(http://youtu.be/Kdnqa96tl08). 이것은 우크라이나의 오늘날 모습을 짧은 영상으로 비교적 잘 담은 것이기에 이곳에다 알린다.





다음으로 2011년 8월 24일, 곧 우크라이나의 독립기념일 때 찍었던 노코멘트 티비의 영상을 널리 소개한다(http://youtu.be/dS9tvtfjnYo). 이 동영상은 우크라이나의 제 20주년 독립 기념일 공연 모습을 수려한 화면으로 갈무리한 것이다.





이제 아주 흥겹고 유명한 우크라이나 전통 노래 한 곡을 소개할까 한다. "뜨이 쥐 메네 삐드마눌라!"(Ти ж мене підманула!), 곧 "네가 나를 속였어!"라는 뜻의 노래이다. 이 노래는 우크라이나의 여러 가수나 합창단의 노래로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이 영상은 예전에는 우크라이나 땅이었지만 지금은 러시아의 북 카프카즈 지역인 쿠반(Кубань)에 있는 한 우크라이나인 합창단의 노래이다(http://youtu.be/i3kDPA8JhrM).



  

이제 우크라이나어를 많이 들어볼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어 대담 영상을 소개하련다. 유럽 언어들 가운데 수려하기로 소문난 우크라이나어를 이해하고, 대담 예절을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우크라이나의 인떼르(http://inter.ua) 방송의 프로그램인데 빅또르 유시첸꼬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출연하였다(http://youtu.be/ps3cn5jI2Hc). 여기서 그의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그와 관계된 여러 사람의 인터뷰도 보실 수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대체로 흥이 많은 민족이다. 그래서 자뽀리쟈 부근의 드니프로 강변에서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우크라이나 민족의 자유를 위해 나라를 지키던 꼬자크들도 춤을 추어 몸도 단련하고 즐기기도 했다. 그것이 후대에는 여자들까지 더하여 춤을 추게 되었는데,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발동작이 많아서 "호빡"(Гопак)이라 불린다. 그 신나는 춤을 한번 즐겁게들 구경해 보시라(http://youtu.be/ALzZ69HLXuY).

 

 


 


이제, 잠시 우크라이나 국가(國歌, National Anthem)를 들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국가는 보통 행사 때 부르는 일반적인 것과 교회적인 절기 때 부르는 기도로 된 것이 있다. 먼저 국가 행사 때 부르는 것이다(http://youtu.be/976qpS89gkQ). 그 아래의 것은 해석이다(http://youtu.be/bHzHlSLhtmM). 





다음으로 앞에서 이미 설명한 대로 우크라이나 국가 가운데 교회 절기 때 부르는 기도로 된 국가를 소개한다(http://youtu.be/0YxL9e9YFXI). 그 아래에 있는 영상은 역시나 영어로 해석을 적어놓은 것이다(http://youtu.be/h3FYjaQxLW8).





이 글을 마치면서, 어떤 지도를 모체로 해서 내가 한국어로 만든 우크라이나 전국 지도를 이곳에 널리 알리며 배포한다. 다음에 연결해 둔 내가 쓴 글에서 이 지도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다(http://gohchangwon.tistory.com/496). 

 





2006년 11월 20일(월), 우크라이나 끄이브에서 고 창원(http://gohchangwo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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