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2010):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를 정리한다선거 (2010):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를 정리한다

Posted at 2010. 2. 16. 01:49 | Posted in 2. 세상/2.2. 우크라이나 옛 얘기




지난 2010년 1월 17일(일요일)과 2010년 2월 7일(일요일)에 사천 칠백만 명의 슬라브인들이 사는 동유럽의 큰 나라인 우크라이나(UKRAINE, УКРАЇНА)에서는 제 5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방식은 1차 투표에서 투표 참가자인 유권자의 반절 이상의 표를 얻으면 곧 그 후보자가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그런 후보자가 없을 때는 1위 득표자와 2위 득표자가 결선 투표를 다시 한다. 이번, 곧 2010년 제 5대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 제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를 한 후보자가 결국 없었다.

방금 전에 밝힌 대로, 지난 2010년 1월 17일(일요일)에 있었던 제 1차 선거에서 유권자 절반 이상의 표를 얻은 후보자가 아무도 없어서 결국에는 친 러시아적인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남부 지방에 자신의 지지 기반을 두고 있는 빅또르 야누꼬브이츠(Віктор Федорович Янукович) 후보가 기호 2번으로, 오렌지혁명을 이끌어냈던 여성 후보인 율리야 뜨이모셴꼬(Юлія Володимирівна Тимошенко) 후보가 기호 1번으로 2010년 2월 7일(일요일)에 결선투표를 치렀는데,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후보가 율리야 뜨이모셴꼬 후보를 3 퍼센트 정도의 차이로 누르고 승리하였다. 2010년 2월 10일(수요일)에 개표가 다 이루어졌고, 2010년 2월 14일(일요일) 오후 4시경에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 결과를 발표하고 확정하였는데,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후보가 48.95 퍼센트인 천 이백 사십 팔만 천 이백 육십 팔(12.481.268) 표를 얻었고, 율리야 뜨이모셴꼬 후보가 45.47 퍼센트인 천 백 오십 구만 삼천 삼백 사십(11.593.340) 표를 얻었다고 발표하였다. 두 후보자간의 표 차이는 팔십 팔만 칠천 구백 이십 팔(887.928) 표였다. 그리고 4.36 퍼센트의 유권자들이 기호 3 번에 표기를 하므로 아무 후보자에게도 표를 주지 않는 길을 택했다.


 



서부 우크라이나 지방인 지금의 리브네 주에서 1934년에 태어났던 레오니드 마까로브이츠 끄라브추끄(Леонід Макарович Кравчук)가 1991년 12월 5일부터 1994년 7월 19일까지 러시아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초대 대통령을 지냈고, 우크라이나 북부 지방인 체르니히브 주에서 1938년에 태어난 레오니드 다느일로브이츠 꾸츠마(Леонід Данилович Кучма)가 1994년 7월 19일부터 2005년 1월 23일까지 제 2대와 제 3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북부 우크라이나 지방인 쑤므이 주에서 1954년에 태어났던 빅또르 유시첸꼬(Віктор Андрійович Ющенко) 대통령이 제 4 대 대통령이자 세번 째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제 동부 우크라이나 지방인 도네쯔끄 주의 주도인 도네쯔끄(Донецьк, Donetsk) 북쪽에 있는 도시인 예나끼예베(Єнакієве, Yenakiyeve)에서 1950년에 태어났던 빅또르 페도로브이츠 야노꼬브이츠(Віктор Федорович Янукович, Viktor Fedorovych Yanukovych)가 제 5대 대통령이자 네번 째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일하게 된다.


 

 


이제, 나는 2010년 1월 17일(일요일)에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있었던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 제 1차 투표 때의 일부터 2010년 2월 7일(일요일)에 치러진 결선 투표까지 정리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왜 이번 선거에서 율리야 뜨이모셴꼬가 승리하리라고 예상하였던 나의 짐작이 빗나가게 되었는지도 좀 설명해 드리려고 한다.

먼저, 2010년 우크라이나 제 5 대 대통령선거의 제 1차 투표는 동남부 지방에 지지 기반을 두고 있고 친러시아적인 인물이자 전 국무총리인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후보, 오렌지혁명을 이끌었던 주역으로 똑똑한 여장부여서 웬만한 정치적인 풍랑은 다 넘을 수 있을 것 같으나 여전히 공금 횡령의 죄목을 달고 다니는 율리야 뜨이모셴꼬 후보, 경제인으로 한동안 경제부장관과 국무총리 자문위원을 지냈으며 우크라이나 최대 갑부 가운데 한 사람인 쎄르히이 띠히쁘꼬(Сергій Леонідович Тігіпко) 후보, 서른 너다섯 살의 아주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빅또르 유시첸꼬 대통령 시절에 외무부장관과 국회의장을 지낸 경제인이자 법조인인 똑똑한 아르쎄니이 야쩨뉴끄(Арсеній Петрович Яценюк) 후보, 오렌지혁명의 수혜자이자 현 대통령으로 민족주의자에 가까운 듯이 행세하는 빅또르 유시첸꼬(Віктор Андрійович Ющенко) 후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은 그리 없지만 자신의 정치적인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출마한 현 국회의장인 볼로드이므이르 르이뜨브인(Володимир Михайлович Литвин) 후보, 이런 인물들이 당시 전체 후보 열 여덟 명 가운데 당선될 가능성이 많거나 그래도 선전할 가능성이 있었던 후보들이었다.

우크라이나어로 발간되는 흘라브레드(Главред, http://www.glavred.info)라는 잡지의 2010년 1월 25일자 10쪽과 11쪽에 실린 2010년 제 5대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 제 1차 선거 득표율을 기록한 지도를 이곳에 올린다. 빨간색이 대부분인 서부 우크라이나 지역은 현 국무총리인 율리야 뜨이모셴꼬 후보가 앞선 지역이고, 파란색이 대부분인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방은 전 국무총리인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후보가 앞선 지역이다. 3위를 한 쎄르히이 띠히쁘꼬나 4위를 한 아르쎄니이 야쩨뉴끄의 득표율도 있다. 
 

 

 


이 위의 1차 대통령선거 결과를 예전 곧 '오렌지혁명'이라 일컫는 2004년 선거 때의 득표율과 비교해 보면 아래 두 지도와 같다. 빨간색, 파란색, 회색으로 구분을 해놓은 것이 이번 선거인 2010년 제 1차 선거 결과인데, 빨간색은 율리야 뜨이모셴꼬의 득표율이고 파란색은 빅또르 야누꼬브이츠의 득표율이다. 그리고 그 밑에 오렌지색, 파란색, 회색으로 구분된 것은 2004년 오렌지혁명 당시의 선거 결과인데, 오렌지색은 빅또르 유시첸꼬의 득표율이고 파란색은 빅또르 야누꼬브이츠의 득표율이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이번 제 1차 대톨령선거에서는 5년 전보다 야누꼬브이츠에 대한 동부 지방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다. 그만큼 빅또르 야누꼬브이츠의 자질에 대한 문제가 심각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글의 끝부분에서 기록하겠지만 율리야 뜨이모셴꼬와 빅또르 야누꼬브이츠만 남은 결선 투표 때는 동남부 우크라이나인들이 그래도 또 빅또르 야누꼬브이츠를 또 지지하였다. 다시 밝히자면, 아래 지도는 빅또르 야누꼬브이츠가 나온 이번 제 5 대 대통령선거의 제 1차 선거 결과와 지난 2004년 오렌지 혁명 때의 대통령 선거 결과이다.


 

 


새로운 사람이 아닌 늘 나오던 빅또르 야누꼬브이츠와 율리야 뜨이모셴꼬 두 사람이 또 다시 제 5대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 결선 투표에 진출하게 되는 제 1차 선거 결과가 나오자 많은 우크라이나 유권자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자 스쵸? 야 쥐 붑 쁘로뜨이 브씨흐."(За що? Я ж був проти всіх.). 그 말 뜻은 "무엇 때문에? 내가 모두를 반대했는데......"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최근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의 행보를 지켜본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그동안 정치인들을 어떻게 말해 왔는가를 좀 알아야 한다. 2004년의 오렌지혁명으로 부정부패가 없어지고 나라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할 줄 알았던 우크라이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오렌지혁명의 수혜자였던 빅또르 유시첸꼬 현 대통령이 자신들의 뜻을 이뤄주지 않고, 다른 정치인들도 별다른 일도 하지 않고 매달마다 일반 국민들의 몇 십배에 해당하는 월급을 꼬박꼬박 받아가며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것을 보고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다 도둑놈들이예요."라고 말해 왔다. 우크라이나어로 '도둑놈들'이란 단어가 '반드이뜨이'(Бандити)인데,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최근에는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들, 국회의원들을 구분하지 않고 정치인들에게 이렇게 말해 왔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창녀들'(Проститутки, Шлюхи)이란 말을 특정한 정치인들에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지난 2010년 1월 14일(목요일)에 페멘 단체 회원들이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끄이브(키예프)에서 대통령 후보가 속한 각 당을 표현한 종이를 들고서 그 정치인들이 거리의 여인들이라고 전제하고 자신들을 그 당의 정치인으로 비유한 뒤 거리에서 운전자들에게 돈을 달라고 하여, 창녀 같은 정치인들이 선량한 국민들에게 표를 구하고 있으니 유권자들은 그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투표해야 한다고 홍보하였다(http://tsn.ua/video/video-novini/?page=4&media_id=194641&items=24644&type=0). 이것은 우크라이나의 일반 국민들의 정서인데, 우크라이나인들은 요즘 대부분의 정치인들을 거론할 때 돈을 위해 자신들의 사랑을 파는 '창녀들'(Проститутки), 곧 "우크라이나의 정치인들은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이리저리로 몰려다니는 창녀들 같은 사람들이예요."라고 하면서 빈정댔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빅또르 야누꼬브이츠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빅또르 야누꼬브이츠가 오렌지혁명으로 잃었던 자신의 명예를 회복했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러시아적인 눈을 가진 이들의 말이다.

내 예상대로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후보가 1위로 1차 투표를 통과해 결선에 올랐고, 율리야 뜨이모셴꼬 후보가 쎄르히이 띠히쁘꼬를 따돌리고 2위로 역시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그래서 친 러시아 성향의 야누꼬브이츠 전 국무총리와 친 유럽 성향의 뜨이모셴꼬 현 국무총리 사이의 피말리는 정치적인 싸움과 경쟁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그 때에 칼을 빼든 사람은 빅또르 야누꼬브이츠였는데, 1차 투표 때 현 국무총리인 율리야 뜨이모셴꼬 밑에서 내무부장관으로 일하며 자신의 텃밭인 동부 지방 유권자들의 가택선거 투표율을 세 배나 떨어뜨린 유리이 루쩬꼬(Юрій Віталійович Луценко) 내무부장관을 2010년 1월 28일(목요일) 오전 11시 45분경에 국회에서 투표를 통해 해임시켰다. 그 해임 투표는 빅또르 야누꼬브이츠가 소속된 지역당이 주도하여 이루어졌는데, 국회의원 정원 450명 가운데 398명이 참석하여 231명이 찬성하여 과반수인 225명보다 여섯 표가 더 많은 차이로 유리이 루쩬꼬 내무부 장관 해임안이 처리되었다. 그 일은 결선 투표를 앞두고 내무부장관 곧 경찰청을 지휘하던 율리야 뜨이모셴꼬의 오른팔을 잘라내었다는 뜻이다. 1차 투표에서 5위를 한 빅또르 유시첸꼬 현 대통령이 속한 당과, 1차 투표에서 2.4 퍼센트를 얻어 7위에 그친 볼로드이므이르 르이뜨브인 현 국회의장이 이끄는 당은 물론, 1차 투표에서 3.6 퍼센트의 표를 얻어 6위를 한 뻬뜨로 쓰이모넨꼬(Петро Симоненко)가 이끄는 공산당이 합세하여 이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후보는 야합을 하여서 율리야 뜨이모셴꼬 후보의 오른쪽 날개를 순식간에 잘라내버렸다.


 

 


그 무렵 율리야 뜨이모셴꼬는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우크라이나 국회를 해산한 뒤 조기 총선을 치르는 국가적인 예산 낭비를 결코 하지 않고 2년 정도 남아있는 국회의원들의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빅또르 야누꼬브이츠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곧장 국회를 해산시키고 이번에 나타난 국민들의 여망을 담아 국회를 다시 구성하는 조기 총선을 실시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그런 때에 빅또르 유시첸꼬 대통령은 자신의 유럽 지향의 정치 행로를 이어받을 인물이 빅또르 야누꼬브이츠가 아닌 율리야 뜨이모셴꼬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지지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지지했던 5.5 퍼센트의 유권자들에게 율리야 뜨이모셴꼬를 지지하라고 말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 노선과는 정반대의 인물인 빅또르 야누꼬브이츠를 지지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고, 결국에는 그가 이끄는 당의 일부 의원들이 유리이 루쩬꼬 내무부장관 해임안에 찬성을 하게 되었다. 볼로드이므이르 르이뜨브인 국회의장도 이번 1차 대통령선거에서의 형편 없는 성적표를 손에 들게 되어서 국회를 해산하고 또 선거를 치르자는 빅또르 야누꼬브이츠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번에도 대통령 선거에 나왔고 친 러시아 성향이어서 빅또르 야누꼬브이츠와 가까운 공산당수인 뻬뜨로 쓰이모넨꼬 역시 그런 이유로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편에 섰던 것이다.


그후 2010년 2월 1일(월요일) 밤에 '1번 채널'인 우크라이나 국영 방송국에서 대통령 후보자간의 토론회가 열렸는데, 우크라이나어와 논리가 부족한 빅또르 야누꼬브이츠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고 율리야 뜨이모셴꼬만 홀로 참석했다. 그 대신 빅또르 야누꼬브이츠는 다른 방송국에 출연해 개인적인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로부터 이틀 후에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후보가 한번 더 율리야 뜨이모셴꼬 후보에게 칼을 빼들었다. 그것은 바로 선거법을 선거 기간 중에 개정한 것이었다. 2010년 2월 3일(수요일) 오후 4시 51분경에 국회에서는 대통령선거법("ПРО ВИБОРИ ПРЕЗИДЕНТА УКРАЇНИ") 가운데 개표에 관한 법안 곧 각 정당 참관인들이 삼분의 이가 모여야 투표함을 열어 개표를 시작하던 법을 바꿔 과반수의 참관인만 모여도 개표를 시작할 수 있도록 개정하였다. 이 개정안도 역시 전 국무총리인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대통령 후보가 속한 지역당에서 주도하였는데, 빅또르 유시첸꼬 현 대통령이 속한 당과, 뻬뜨로 쓰이모넨꼬가 속한 공산당이 찬성하여, 통과되었다. 그리고 빅또르 유시첸꼬 대통령이 곧바로 서명을 하여서 그 개표법은 대통령 선거 중에 곧바로 효력을 발생하였다.

 

 

 


이런 두 가지의 뜻밖의 일로 빅또르 야누꼬브이츠에게 일격을 당한데다 1차 선거에서 3위를 한 쎄르히이 띠히쁘꼬에게 갔던 유권자들의 표를 다 가져오지 못한 율리야 뜨이모셴꼬는 국민들의 정서에 호소할 길밖에 없었다. 그와 반대로 내무부장관을 해임시키고 선거법을 고치며 대통령선거에 나왔다가 낙마한 유력한 후보자들의 율리야 뜨이모셴꼬 지지를 막아낸 빅또르 야누꼬브이츠는 승리를 예감한 듯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앞에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편하게 대통령 선거일을 기다렸다.

한편, 이번의 제 5 대 대통령선거에서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오래된 정치인들이 아닌 새로운 정치인을 원했는데 외무부장관과 국회의장을 지낸 서른 너다섯 살의 아르쎄니이 야쩨뉴끄라는 새로운 후보자가 나왔던 서부 지역을 제외한 우크라이나 전국에서는 1차 투표에서 쎄르히이 띠히쁘꼬에게 13.1 퍼센트나 되는 표를 몰아주었다. 그리고 1차 투표가 끝나고 나서 그의 행보를 지켜보았는데, 그 역시도 조기 총선을 외치며 두 후보자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염려하며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대등한 위치에서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고 아이엠에프(IMF)의 구제 금융을 받는 우크라이나의 무너진 경제를 다시 일으키려는 율리야 뜨이모셴꼬가 국무총리 자리로 청하며 자신을 도와 결선 투표에서 빅또르 야누꼬브이츠를 이기고 함께 우크라이나를 위해 일하자고 제안하였으나, 끝까지 그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 2004년의 오렌지혁명 당시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캠프를 박차고 나왔던 그였기에, 나는 그가 경제인답게 자신의 몸값을 불리겠지만 결국에는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위해 흔쾌히 율리야 뜨이모셴꼬의 제안에 응하리라고 보았는데, 쎄르히이 띠히쁘꼬는 우크라이나의 식견 있는 유권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끝까지 기회주의자로 처신하였다. 모르긴 해도 우크라이나는 물론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빅또르 야누꼬브이츠보다 더 인정을 받는 율리야 뜨이모셴꼬가 대통령이 되어 국가 개혁을 이루어간다면, 5년 후에 자신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눈치 빠른 경제인인 쎄르히이 띠히쁘꼬는 좀 과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1차 대통령 선거에서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역시 쎄르히이 띠히쁘꼬를 향해서도 실망감을 감추지 않으면서 정말 우크라이나 정치인들 가운데는 자신들이 맘 놓고 믿을 만한 자가 없다고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를 잊으려고 애쓰고들 있다. 나도 역시나 다르지 않다.

그렇게 하여 2010년 2월 7일(일요일)에 눈에 묻힌 우크라이나에서는 결선 투표를 치러 동남부 지방에 지지 기반을 둔 전 국무총리인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후보가 48.95 퍼센트인 천 이백 사십 팔만 천 이백 육십 팔(12.481.268) 표를 얻었고, 오렌지혁명의 여전사인 현 국무총리인 율리야 뜨이모셴꼬 후보가 45.47 퍼센트인 천 백 오십 구만 삼천 삼백 사십(11.593.340) 표를 얻었다. 두 후보자간의 표 차이는 팔십 팔만 칠천 구백 이십 팔(887928) 표였다. 그리고 4.36 퍼센트의 유권자가 기호 3 번에 표기를 하므로 아무 후보에게도 표를 주지 않았다. 2010년의 세계 뉴스 1면을 장식했던 제 5대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선거는 그렇게 끝났다. 율리야 뜨이모셴꼬 현 국무총리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겠지만 곧 빅또르 야누꼬브이츠가 우크라이나 국회의사당에서 헌법에 오른손을 얹고 선서를 하므로써 우크라이나 제 5대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최근에 오든쁠류스오든(http://www.1plus1.ua)이라는 우크라이나 텔레비전 뉴스 채널에서 조사하는 것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이번, 2010년 1월 17일과 2월 7일에 있었던 제 5대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 결과에 대하여 그렇게 만족해 하는 것 같지는 않다(http://tsn.ua/bin/polls.php).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해서 당신은 만족하세요?"(Чи задоволені Ви результатом виборів президента?)란 이번의 제 5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질문에 62 퍼센트가 "아니다"고 대답하였고 28 퍼센트만 "만족한다"고 대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미 그런 후회는 소용이 없으리라.

 

 


2010년 2월 7일(일요일)에 치러진 이번 대통령선거 결선투표 결과는 물론 지난 2010년 1월 17일(일요일)에 치러졌던 제 1차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 결과, 2004년 12월 26일(일요일)에 치러졌던 오렌지혁명 당시의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 결과를 올려 보련다. 우크라이나어로 발행되는 주간 잡지인 "뜨이쥐덴"(ТИЖДЕНЬ, http://www.ut.net.ua)의 2010년 2월 12일~18일자 12쪽과 13쪽에 기록된 자료이다. 제목은 "동쪽으로부터의 바람"(Вітер зі Сходу)이고 오른쪽의 부제는 "뻬레딜 쁘르이흐일노스띠"(Переділ прихильності)로, 1차 선거에서 쎄르히이 띠히브꼬, 아르쎄니이 야쩨뉴끄, 빅또르 유시첸꼬를 지지했던 지지자들이 결선투표에서는 누구를 지지했는가 하는 자료가 그 세 후보자의 사진과 함께 오른쪽에 자세히 실려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두 개의 특별시, 스물 네 개의 주, 한 개의 자치공화국에 각각 세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맨 왼쪽 기둥은 2004년 오렌지혁명 당시 빅또르 유시첸꼬와 빅또르 야누꼬브이츠가 겨뤘던 대통령선거 결과이고, 가운데 기둥은 이번의 대통령선거인 2010년 1월 17일(일요일)에 열여덟 명의 후보가 나와 치렀던 제 1차 선거 결과이며, 오른쪽 기둥은 이번의 대통령 선거인 2010년 2월 7일(일요일)에 율리야 뜨이모셴꼬와 빅또르 야누꼬브이츠가 겨뤘던 제 2차 대통령선거 결과이다. 이번에 대통령에 당선된 빅또르 야누꼬브이츠의 득표율은 파란색으로, 이번 선거에서 낙마한 율리야 뜨이모셴꼬의 득표율은 빨간색으로, 지난 2004년 선거 때의 당선자였던 현재 대통령인 빅또르 유시첸꼬의 득표율은 오렌지색으로 칠하여져 있음을 밝혀 놓는다.

 

 

 


이제 이 위의 자료를 알기 쉽게 몇 가지 내용을 골라서 좀 해석해 보려고 한다. 첫째, 제목("동쪽으로부터의 바람")이 알려주듯이 빅또르 야누꼬브이츠의 지지율이 중서부 우크라이나에서 예전보다 늘어났다. 이것이 빅또르 야누꼬브이츠의 당선에 큰 몫을 하였다. 둘째, 좋든 싫든 빅또르 유시첸꼬 대통령의 영향력을 논해야만 할 것이다. 그는 1차 선거에 낙마한 후 자신의 정책과 비슷한 율리야 뜨이모셴꼬를 지지하지 않았고 그가 속한 당의 일부 의원들이 율리야 뜨이모셴꼬 정부의 내무부장관이었던 유리이 루쩬꼬 해임안에 찬성표를 던지는데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 찬성표를 던졌던 그가 속한 당 의원 11명 가운데 6표만 빠졌어도 유리이 루쩬꼬 내무부장관 해임안은 부결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경찰청이 속한 내무부를 강력하게 지휘해 왔고 선거 기간 중에도 그 영향력을 발휘하여 왔던 유리이 루쩬꼬가 자리를 지켰을 터이고 이번의 대통령선거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 것이다. 또 빅또르 유시첸꼬 대통령은 빅또르 야누꼬브이츠가 속한 지역당이 발의하여 국회를 통과해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대통령 선거 개표 때에 삼분의 이의 참관인이 모이지 않고 과반수만 모여도 선거함을 열어 개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새 법안에 대통령으로서 싸인을 하여 그 법안을 발효시켜서 율리야 뜨이모셴꼬를 곤경으로 몰고 갔다. 이것이 빅또르 유시첸꼬가 이번 선거에서 한 일이다. 셋째, 1차 선거에서 3위를 하여 결선 투표에는 떨어졌지만 상당한 표를 얻었기에 율리야 뜨이모셴꼬의 공개적인 청과 빅또르 야누꼬브이츠의 비공개적인 청을 받은 쎄르히이 띠히쁘꼬가 자신을 지지하였던 지지자들을 끌고 두 후보 가운데 더 개혁적인 인물인 율리야 뜨이모셴꼬 편에 가담하여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위하여 선거를 치르고 선거를 승리한 후에 국무총리의 길을 가는 정치 일정을 열어갈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끝까지 기회주의자로 처신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처신하므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자신의 몸을 던져 국가를 위해 일할 마음이 전혀 없는 정치인이라는 느낌을 그는 심어 주었다. 그렇지만 그는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밑에서 국무총리나 각료로 일할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후에는 대통령에 도전할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1차 선거에서 그 쎄르히이 띠히쁘꼬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은 율리야 뜨이모셴꼬와 빅또르 야누꼬브이츠에게 각각 반절로 갈라져서 표를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넷째, 오른쪽 사진의 두번째 인물인 아르쎄니이 야쩨뉴끄는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일정한 지지도 받고 자신의 정책도 알렸다 할 것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그는 "다음에 또 돌아오겠습니다!"는 유행어를 남겼고, 부자답게 끄이브(키예프) 시내의 거리에다 이번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해 준 유권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광고를 널리 하고 있다.

자료로 남기기 위해 한 마디 적어두자면, 율리야 뜨이모셴꼬 후보는 중서 우크라이나 16개 주와 수도인 끄이브(키예프), 그리고 해외 거주 우크라이나 동포들에서 승리하였고,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후보는 동남부 우크라이나 8개 주와 크르임(크림) 자치공화국, 쎄바스또뽈 특별시에서 승리하였다. 동남부 우크라이나의 인구와 재력이 더 많은데다 중서부 우크라이나에서 지지율이 좀 올랐기 때문에 이번에 빅또르 야누꼬브이츠가 이긴 것이다. 2010년에 있었던 제 5대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는 이러 하였다.

참, 이번 대통령선거의 제 1차 대통령 선거 우크라이나 전국 투표율은 66.76 퍼센트였고, 제 2차 대통령 선거 우크라이나 전국 투표율은 69.15 퍼센트였다. 보다 더 자세한 2010년의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의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는 다음의 웹싸이트로 가 보시라(http://www.cvk.gov.ua/pls/vp2010/WP0011).



2010년 2월 15일(월), 우크라이나 끄이브에서 고 창원(http://gohchangwo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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