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다가 돌연 그 일을 취소하고 러시아(RUSSIA)의 그늘로 들어가려던 야누꼬브이츠(ЯНУКОВИЧ) 대통령과 그 정부에 반대하여 지난 2013년 11월 22일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야당의 반 정부 시위로 인하여 나는 그동안 우크라이나 방송을 주의 깊게 지켜보며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며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생각해 왔다. 그러다가 마침내 국회에서 며칠 전인 2014년 1월 28일에 친 러시아 성향의 여당인 지역당이 주도해 1월 16일에 날치기로 통과한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시위를 원천봉쇄하는 시위법을 취소하고, 그동안 러시아어를 쓰며 친 러시아 정책에 일조해 왔기에 야당과 우크라이나 국민의 원성을 사 왔던 러시아인인 아자로브(АЗАРОВ) 국무총리가 사임하자, 좀 편안한 마음으로 내 블로그에 들어와 글도 쓰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2014년 1월 28일(화요일)에 여론에 밀려 시위법을 일단 취소한 여당에 속한 국회의장 르이박(Володимир РИБАК)은 그날 하루 종일 속회 시간을 어기고 미루기를 여러 차례 하던 중 다음 날로 회의를 연기하고 다음 날 회의를 속개했지만 역시 그 날도 하루 종일 미루더니, 갑자기 한밤에 야누꼬브이츠(Віктор ЯНУКОВИЧ) 대통령이 경호원 몇을 대동하고 국회를 방문하여 자기 지역당 소속 의원들과 비밀리에 회의를 한 후인 밤 11시쯤에 야당이 요구했던 이번 시위자들의 사면에 대한 법을 야당과 시위대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여전히 시위대들을 테러리스트로 오해할 만하게 법을 통과시켰다. 2014년 1월 29일(수요일) 밤의 일이다. 그후 나온 야당 인사의 말에 따르면 그 전 날 취소한 법에 아직 대통령이 싸인을 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일단 러시아인인 국무총리는 사임하여 이원집정부제의 특성을 갖는 우크라이나의 내각은 비어 있지만 아르부좁(Сергій АРБУЗОВ) 부총리가 국무총리 대행을 하니 이번의 이 일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므로 이렇게라도 일단 글을 좀 써서 나를 걱정하는 분들과 우크라이나 사정을 알고 싶으신 분들께 우크라이나의 사정을 좀 알리려 한다. 이번의 반 정부 시위에서 특수 경찰들의 저격수가 쏜 듯한 총에 맞아 시민들 가운데 세 사람 정도가 사망했는데 그 충돌 지점과 끄이브(키예프) 중심가의 시위대들의 활동 반경이나 대통령 집무실, 국회 같은 장소들을 표시한 나의 지도를 먼저 좀 보시라. 아마도 좀 더 이해하기 쉬우실 테니 말이다.

 

 

 

 


자, 이제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좀 설명을 시작하련다. 먼저 왜 이 시위가 시작되었는지이다. 친 러시아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러시아에 가까운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방에 지지 기반을 둔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2010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는 우크라이나 역사, 문화, 미래에 별 관심이 없다. 어찌 보면 그의 대통령 당선이 이번 시위를 잉태했다고 보아도 그리 틀리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를 2004년 겨울의 오렌지혁명에서 유시첸꼬(В. ЮЩЕНКО) 전 대통령에게 권좌를 뺏기고 와신상담하여 다시 대통령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하던데, 그것은 우크라이나에서 보는 입장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또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미국식이었다면 불가능하였으리라. 왜냐하면 우크라이나 전국 주들의 지지율과 외국에 거주하는 재외 우크라이나인들의 지지는 그 대통령선거 당시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여성 지도자인 뜨이모셴꼬(Ю. ТИМОШЕНКО)가 더 많았다. 그러나 반 우크라이나적인 친 러시아 성향의 동부 지역의 투표자들이 더 많은데다 유시첸꼬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더해져 전국 투표권자들의 표를 전체적으로 집계하는 우크라이나에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그에 대해서는 나의 다른 글을 보시라: http://gohchangwon.tistory.com/170). 

 

 

 



그렇게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된 그는 자신의 정체를 마음껏 드러내려는 듯이 사사건건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의 입장을 대변해 왔다. 먼저 그는 우크라이나 남부의 흑해 연안의 항구인 쎄바스또뽈(Sevastopol)을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서와 반하게 러시아 함대에 또 장기 임대하고, 유럽의회에 가서는 지난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있었던 그 당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의 스탈린 정부의 고의적인 곡식 수탈로 인한 800만명쯤 되는 우크라이나인 집단 학살을 부정하여 그가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인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러시아어를 많이 사용하는 동부 우크라이나인들의 마음을 위해서인지 국어인 우크라이나어가 아닌 러시아의 공식 언어인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어와 동격으로 올려서 각 지방 정부가 자기 주에서 사용할 언어를 결정할 수 있게 하였다. 또 개인적으로는 자기 자식들에게 부를 축적하는 일을 진행하였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인들은 그와 그의 가족을 '비즈니스맨 가족'이라 조롱한다. 그러던 중 그는 전임자부터 진행해 오던 유럽연합(EU) 가입 추진을 러시아(RUSSIA) 뿌띤(Putin)의 반대로 취소하게 된다(http://tsn.ua/video/video-novini/ukrayina-vidmovilasya-pidpisuvati-asociaciyu-iz-yevropeyskim-soyuzom.html). 2013년 11월 21일의 일이다. 우크라이나 방송의 영상이다.

 

 

 

 


그것이 이번의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야당의 반정부 시위의 단초이다. 여기 연결한 유튜브 영상을 보시면 야누꼬브이츠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뿌띤(PUTIN)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 이번 반 정부 시위의 시작이었음을 아시리라(http://youtu.be/rv9Q_Ffp9V4; 장소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마이단 독립광장으로 대통령 부정선거를 멸한 2004년의 오렌지혁명의 장이기도 하다; 내 시위 설명도의 ③번 위치). 그리고 이어지는 한 영상은 이번의 야누꼬브이츠 대통령 반대 시위가 그냥 집회가 아닌 혁명임을 천명하고 있다(http://youtu.be/fQbiyqrlokA).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라고 생각하신다면 아마도 독자 여러분은 지금까지 러시아가 만들어 준 눈으로 우크라이나를 보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것은 우크라이나에서 살고 있을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일로 설명을 하자면 일본의 강점이 끝나 조국이 독립을 맞았는데도 일본의 통치가 암암리에 친 일본 인사들을 통해서 줄곧 우리나라에서 행해져 왔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차이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따라서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유럽연합이 아닌 러시아로 돌아가려는 것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있어서는 소련으로 돌아가는 치욕이라 여겨 그 대통령과 그 정부에 반대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우크라이나 반 정부 시위는 내가 보기에는 제 2의 독립운동과도 같은 일이다. 러시아, 예전의 소련은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존중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 생각으로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콤플렉스를 그렇게 풀지 않았나 싶다. 러시아 정교회의 시작이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끄이브(우리는 보통 러시아어의 음역인 '키예프'라 부르지만 그것은 한 나라의 수도를 그 나라 말로 부르지 않는 잘못된 일임을 내 블로그에 전에 밝힌 적이 있음: http://gohchangwon.tistory.com/137)이다. 그것이 러시아인들을 그렇게 자존심 상하게 한다고 나는 본다. 자기들이 세계를 미국(USA)과 나눠서 지배했던 적이 있고 지금도 세계 강국인데 정교회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에 그 뿌리가 있으니 얼마나 참기 어렵겠는가! 아마도 러시아인들의 성정에 참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니 애써 우크라이나인들을 '변방의 새끼들'이라고 무시하는 편을 택한 것이리라. 게다가 지금은 러시아 정교회가 세계 정교회 가운데 제일 크다는 자만감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이것이 러시아의 실체이다. 아직도 스탈린 시대를 그리워하며 합법적인 시위를 허용하지 않는 정부가 러시아에서 서 있는 한 그 일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때에 친 러시아 성향의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유럽에 속해 있는 우크라이나를 유럽연합이 아닌 러시아의 우산 속으로 넣어 우크라이나를 다시 러시아의 속국으로 만들려고 하자 우크라이나의 양식 있는 청년들, 자식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어머니들, 야당 정치인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 이번 반정부 시위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반정부 시위대는 이번 반정부 시위의 목적을 러시아인 국무총리 퇴진, 대통령 사임, 올해 안의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로 천명하고 반 정부 시위가 아닌, '혁명'이라고 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렌지혁명의 장인 끄이브의 중심, 마이단 독립광장에 모여서 평화적으로 집회를 하며 지내왔다(http://youtu.be/jzQqnQter0c). 그러던 중 독수리의 일종인 '베르쿠트'(Беркут; Berkut)를 부대 이름으로 쓰고 있는 특수 경찰들이 이 시위장에 투입된다. 그들은 일반 시위자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심지어 기자들까지 때려서 일반 경찰들이 시위 중이던 시민들에게 길을 내 줄 정도였다. 지난 2013년 11월 30일, 금요일의 일이었다.

 

 

 

 


그래서 전국적인 반감을 사게 되고 수도인 끄이브(키예프)에서는 야누꼬브이츠 대통령 집무실로 야당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몰려가서 항의를 하게 된다(내 시위 설명도의 ⑧번 위치; http://youtu.be/_l-5tn2qQbw). 그후로 시민들이 시내로 더 모이고 마이단에 해마다 12월 하순부터 1월 중순까지 세우는 전례에 따라 설치하다 만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의 철재 골격 주위에 준비해 둔 철재판들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집기들로 마이단의 양쪽 도로를 막고 성채처럼 바리케이드를 치게 되고(내 시위 설명도의 ③번 위치) 세 명의 야당 지도자, 곧 대통령선거에서 야누꼬브이츠에게 져서 직권 남용 혐의를 쓰고 7년형을 받고 감옥에 있는 유력한 야당 지도자인 율리야 뜨이모셴꼬(Юлія ТИМОШЕНКО)가 있던 당의 당수로 예전 유시첸꼬 정부 때 외무부장관과 국회의장을 지냈으며 외국어에 능한 아르쎄니이 야쩨뉵(Арсеній ЯЦЕНЮК), 권투 세계 챔피언으로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에 능한 우크라이나 민주 개혁 동맹(УДАР; Український Демократичний Альянс за Реформи Віталія Кличка)의 당수인 비딸리이 클르이츠꼬(Віталій КЛИЧКО), 서부 우크라이나에 지지 기반이 있는 자유당의 당수인 올레흐 땨흐느이복(Олег ТЯГНИБОК)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를 더 이어나간다(http://youtu.be/XO1aXfXPuUA). 그러는 과정에서 시민들과 기자들이 특수경찰들로부터 더 다치게 되고(http://youtu.be/zBWqawm81Fo) 대통령의 의식 전환이 없자, 이번 반 정부 시위의 목적이 소련의로의 회귀, 곧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러시아로 우크라이나를 바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려고 끄이브(키예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구 소련의 상징인 레닌 동상을 2013년 12월 8일(일요일)에 쓰러뜨린다(내 시위 설명도의 ①번 위치; http://youtu.be/x0M5ILF2kwA).

 

 

 

 


그리고 그때 외국의 인사들, 예를 들어 독일의 외무부장관, 유럽연합의 책임자들, 미국의 유력 정치인 등이 그 마이단 독립광장 현장에 참석하여 시위대와 야당의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게 된다(http://youtu.be/OrxQTzd9Vf0, http://youtu.be/qjtpkY6dyXs, http://youtu.be/c6NemSgrrGc, http://youtu.be/qVGWlH-bCu4). 또 유럽연합 의회는 의사당에서 우크라이나 국기와 유럽연합(EU) 깃발을 들고 흔들며 우크라이나의 반 정부 시위를 응원하고 있기도 한다(http://youtu.be/7t2TKrR6SZ8).

 

 

 



그렇게 해를 넘기자, 2014년 1월 16일에 친 러시아 성향의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속한 여당인 지역당은 시민 시위대들을 한꺼번에 범죄자로 몰아 처리하기 위해 집회나 시위에 관한 법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국회에서 의원들의 의석 앞에 있는 전자 기표 기기를 누르는 방식이 아닌 서로 엉켜 싸우는 상태에서 손을 드는 방식으로 깔례트닉 제 1 국회 부의장(Ігор КАЛЄТНІК)이 통과시킨다(http://tsn.ua/video/video-novini/deputati-tradiciyno-biykami-i-golosuyuchi-rukami-uhvalili-byudzhet.html). 이 일은 시위 자체를 못 하게 하여 양심과 집회 결사의 자유를 아주 심각하게 금하는 법이었다. 자동차가 다섯 대 이상 함께 움직일 수 없고 시위 도구를 전혀 설치할 수 없고 마이크도 쓸 수 없으며 특히 외국인이 시위에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줄 수 없도록 했고, 경찰이 원하면 누구라도 이메일 등을 검사할 수 있도록까지 하였다. 또 시위 때 마스크를 쓰면 안 된다는 조항까지 있어서 어린 학생들이 학교 복도에서 놀다가 몇 명 이상이 모였으니 목도리로 마스크를 하면 안 된다고 농담을 할 정도의 법이었다. 그런 법에 친 러시아 성향의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은 바로 그 다음 날 서명을 하여 그 시위법의 효력을 발생시킨다. 그렇게 되자 마이단 독립광장의 시민 시위대들 전부가 곧바로 불법자들이 되었다.

 

 

 



그러자 시민들과 시위대들이 그동안 모여서 집회를 해 왔던 마이단 독립광장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국회의사당으로 가서 국회의사당(내 시위 설명도의 ⑥번 위치)을 점거하려는 일이 발생한다. 그때 시위대 중 시민 방어를 주로 했던 '프라브이 쎅토르'(Правий сектор; 우익 진영)에 속한 젊은이들이 앞장서게 되고 '베르쿠트'라는 독수리 특수경찰들이 방어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시위대가 경찰의 차를 불태우는 일이 발생하고 시위가 과격해지기 시작한다. 2013년 12월 19일(일요일) 밤의 영상이다(http://youtu.be/-hosf-xcgGs). 그 무렵 특수 경찰들은 시민들에게 총을 쏘기 시작한다. 누가 먼저인지는 이견이 있다. 그 충돌 지점이 끄이브 디나모 프로 축구 경기장의 정문 바로 옆의 흐루셰브스꼬호 거리(вулиця Грушевського; 내 시위 설명도의 ⑤번 위치)이다. 이번 반 정부 시위가 그렇게 과격해지고 그러다가 2014년 1월 22일(수요일)에 시민들 가운데서 첫 사망자가 발생한다. 중부 우크라이나의 드니프로뻬트로브스크 주에서 끄이브(키예프)로 와서 특수 경찰인 베르쿠트들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일로 시민들의 최 전방에 서 있었던 쎄르히이 니호얀(Сергій НІГОЯН; Sergiy NIGOYAN)이라는 청년이 바로 그다(http://youtu.be/VP_XijXspXg). 그는 아르메니아 인종인데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서 우크라이나를 사랑했던 청년이었다. 경찰은 인정하지 않지만 시민들과 마주했던 경찰들이 어쩔 수가 없어서 시민에게 총을 쏜 것이 아니라 높은 건물에 숨어있었던 경찰의 저격수가 쏜 총에 의해 사망하였다(http://youtu.be/Wf2loZkzNDs).

 

 

 

 


게다가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한 청년이 경찰들에게 두들겨 맞고 알몸 상태로 경찰들에게 조롱당하며 한 경찰의 휴대전화기에 사진이 찍히는 영상(http://youtu.be/Gd0b2clZ9s8, http://youtu.be/nwD_C_Wa2Bs)이 전국으로 널리 퍼진다. 

 

 

 

 


심하게 때리고 옷을 다 벗겨 알몸으로 만든 그 청년(Михайло ГАВРИЛЮК)에게 우크라이나 민족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생을 바쳤던 독립 전사들인 꼬자크(Козак)의 수장이 들었던 홀(булава) 같은 느낌으로 얼음을 깨는 삽을 쥐어주며 러시아어로 조롱하며 사진을 찍은 특수 경찰들의 이 비웃음과(http://youtu.be/hIDyNDdRi9I), 시민에게 총을 발포하여 사망자를 낸 정부의 행위을 지켜본 중서부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우크라이나의 상징이 조롱받은 듯한 참담한 마음과 시민을 죽인 정부에 대한 분통한 마음으로 서부 우크라이나를 시작으로 각 주 정부 청사를 점거하기 시작하여 시위가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대된다(아래 지도 참고). 이 일은 열혈파 젊은이들만의 일이 전혀 아니었다. 수많은 여성들을 포함한 일반 시민들의 일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부드러운 사람들로 알려져 있는 중부 우크라이나 빈느이쨔 주의 주도인 빈느이쨔의 한 할머니가 "도저히 그냥 집에 앉아 있을 수 없어서 나왔다며 야누꼬브이츠는 더 이상 우리의 대통령이 아닙니다!"며 울분을 토하는 영상도 나는 방송에서 보았다. 심지어 야누꼬브이츠 대통령 지지 지역인 우크라이나의 가장 동쪽 지역인 루한스크 주나 남부의 오데싸 지역에서까지 경찰들의 시민 살인을 반대하며 그 청년과 그 후에 또 사망한 두 사람을 애도하는 집회들이 이어진다.

 

 

 

 


위 지도는 우크라이나의 이번 시위를 세 가지로 구분하여 나타낸 것인데(2014년 1월 26일 현재), 오른쪽의 세 개 주와 남쪽의 크르임 지역만 빼고는 전체적으로 이번의 반 정부 시위에 동의하고 있다. 빨강색으로 칠해진 주들은 주 정부 청사가 이미 시민 시위대에 점거된 곳들이다. 그리고 짙은 분홍색으로 칠해진 주들은 주 정부 청사 앞에 모래가마니나 집기들로 주 정부 청사를 막고 있는 곳들이다. 그리고 연한 분홍색으로 칠해진 주들은 주 정부 청사를 점거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시위를 지지하는 곳들이다. 그리고 오른쪽과 남쪽의 연한 하늘색으로 칠해진 네 곳만 이번의 시위를 반대하는 곳이다.

 

 

 

 


예상 밖의 전국적인 시위에 놀란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은 그제서야 시위 시민들과 야당에게 화해의 제스쳐를 취한다. 그는 르이박 국회의장을 청해 이야기한 후 2014년 1월 28일(화요일) 10시에 비상 국회를 열어 2013년 1월 16일에 택한 시위법을 취소하고 아자로브 국무총리를 사임시킬 수 있으며,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야당 지도자들 가운데 야쩨뉵에게 국무총리직을 클르이츠꼬에게 부총리직을 제안한다. 그러나 야당은 대통령의 말을 믿지 않고 행동을 믿겠다며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하며 국회의 시위법 취소와 시위자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을 막는지부터 먼저 지켜보겠다고 응대한다. 

 

 

 

 


그렇게 해서 2014년 1월 28일(화요일) 아침 10시쯤에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아자로브 국무총리의 사임서를 수리하고, 국회의사당에서는 의원들이 모여 비상 국회를 열고 야당과 시위대들이 생명을 걸고 항의했던 시위를 원천적으로 막는 '1월 16일법'이라 불리던 시위법과 그에 따른 아홉 가지의 법률을 모조리 취소시켜 버린다(http://tsn.ua/video/video-novini/verhovna-rada-skasuvala-uhvaleni-16-sichnya-zakoni.html). 그리고 중대한 안을 의결하려 한다고 의원들을 독려하여 자리에 있게 하는데, 야당과 협의가 잘 안 되었는가 보다. 아마도 야당은 시위자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정부의 시각 수정을 요구한 듯하고 여당은 이 정도면 되었으니 내각을 구성하여 이 정도로 일을 끝내고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해 주라고 하였을 것이라 나는 짐작한다. 어쨌든 일은 잘 안 되었고, 다음 날 회의 속개를 정하고 마친다. 그리고 2014년 1월 29일(수요일)에 모여 계속하는데, 하루 종일 지지부진하던 중에 한밤 중에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넥타이도 하지 않고 경호원 몇을 데리고 국회 의사당을 찾아 국회 영화관에서 자기 지역당 의원들 몇을 만난다. 그리고 그 지역당 소속인 르이박 국회의장이 밤 11시쯤에 나와서 한 법안을 의결시키는데, 그것은 시위대들을 사면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테러리스트로 생각하는 법이었다.

 

 

 

 


그렇게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시민 시위대나 야당에게 협상 제스쳐를 취해도 결국 언제든지 지역당과 같은 친 러시아 성향인 공산당과 합세하여 과반 의석을 점하니 어떤 법이라도 만들어 통과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시위대들이나 야당은 다시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럴려면 그 전의 시위법을 왜 취소시켰냐는 이야기가 바로 흘러나왔다. 내가 볼 때도 그것이 야당이나 시민 시위대가 결코 대통령의 국무총리 사퇴 카드만으로 물러설 수 없는 이유이다. 지금 회자되고 있는 대로 우크라이나 헌법을 2004년 당시로 되돌리는 일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결국 지금 손을 놓으면 지금까지의 시민들과 야당들의 반 정부 시위의 일들은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나 여당이 언제든지 손쉽게 법을 만들어 뒤집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대통령과 같은 지역당 소속의 러시아인인 아자로브 국무총리 퇴진, 조기 국회의원 선거와 조기 대통령 선거를 요구하며 시작된 이번 반 정부 시위에서 국무총리가 사퇴하였으니 분명히 한 고비는 넘긴 셈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쉽게 끝날 수는 없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아무리 못 해도 국회를 해산하는 일까지 가지 않으면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내년까지 보장된 대통령 자리를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야당과 시민 시위대가 그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국무총리 사퇴만으로 이 일을 정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텔레비전에서 러시아인 국무총리의 어눌한 우크라이나어나 러시아어를 듣지 않는 정도일 뿐이리라. 그러니 지금 양측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의 배경인 러시아의 뿌띤(PUTIN) 대통령이나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야당의 반 정부 시위에 놀라 힘을 보태기 시작한 유럽연합(EU)이나 미국(USA) 오바마(OBAMA) 정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리라. 우크라이나의 반 정부 시위는 여기까지가 최근의 일이다.

 

 

 

 


이 시위 과정에서 수많은 기자들이 말로 할 수 없는 가해를 특수 경찰들로부터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방송은 여전히 이 일을 생중계하고 있다. 나는 주로 5번 채널(http://5.ua)과 에스프레소 방송(http://espreso.tv)을 시청하고 있다. 5번 방송은 설명해주는 자막이 많아서 좋고, 에스프레소 텔레비전은 인터넷으로 시청하기에 편하고 넓은 영상이어서 좋다. 무엇보다 다 우크라이나어여서 참으로 좋다. 시위를 하는 시민들은 대개 우크라아나어를 쓰는 사람들이다. 경찰들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거의 다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들이다. 또 시위대는 예외 없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높이 걸고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폴란드(POLAND)의 어느 시민이 마이단에 와서 시민들 앞에서 러시아어로 연설하려 하자 우크라이나어로 하라고 청할 정도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번의 반 정부 시위가 궁극적인 성공을 하든 못 하든 이미 우크라이나는 반 러시아의 길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아류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나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분들이 있다면 아마 이번의 이 시위가 무서울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눈으로 보면 이 일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반드시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다. 이런 일이 없이 어찌 한 나라의 실제적인 독립이 가능할 것인가! 우크라이나는 지금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말이 나오는 러시아로부터의 실제적인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2013년 11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의 이번 반 정부 시위는 사실 조국 수호 전쟁이라 할 것이다. 2004년 겨울의 오렌지혁명(Orange Revolution)은 대통령 부정 선거에 대한 항의 시위로 지금의 대통령인 그 당시 야누꼬브이츠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취소시키고 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렀다. 지금의 반 정부 시위는 그 규모나 의미 면에서 이미 그것을 다 뛰어 넘었다.  

 

 

 

 


이번의 반 정부 시위에 조심하라고 고맙게도 우리나라 대사관으로부터 이메일이 오지만 사실 시위대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특수 경찰들이 무섭다. 길 가는 차를 세워 시위 진압봉으로 무참하게 부숴버리고 심지어 남편이 있는 여자도 무차별 공격하는 그들이 무서운 것이다(http://youtu.be/c2ie-JL6Ul4). 이 말은 추정이 아니라 영상이 다 있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1980년의 광주의 봄날에 실제로 무서운 사람들이 시민들이었을까, 특수부대원들이었을까? 사건의 경중은 다르고 사망자의 숫자는 다르지만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 행해지는 반 정부 시위는 이미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뒀다고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외침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국민들이나 러시아의 뿌띤 대통령은 물론 유럽에도 알렸으니 말이다. 

 

 

 


 

이번 일을 보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나 우크라이나에 있는 우리 정부 외교 담당자들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끄이브(키예프)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이나 영사관에는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를 알리는 브로셔나 소책자들이 러시아어로 된 것밖에 없었다. 그동안도 나는 그것에 대해서 내 블로그에 이야기해 왔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이나 영사관은 우크라이나어로 된 우리나라 소개 책자를 마련해 줄 것을 바라고, 공식 행사에서 러시아어가 아닌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일을 노력하시기 바란다. 러시아어를 쓰려면 차라리 영어나 한국어로 말하고 통역사를 쓰는 것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존중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기억하시면 자신에게나 우리나라에게나 우크라이나에 다 좋을 것이다. 전에 우리 대사관에서 주최한 무슨 영화제엔가 어떤 모임에 다녀온 우크라이나인이 왜 한국 담당자들이 러시아어로 설명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던 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만약 그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 담당자가 우크라이나의 국어가 아닌 러시아어를 쓰면 어눌한 우크라이나어를 하며 러시아어를 즐겨 쓰는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나, 러시아인으로 비서가 써 준 우크라이나어도 러시아어식으로 읽고 '오'(o) 발음이 있는 러시아어 단어를 '이'(i)로만 바꿔서 발음하면 우크라이나어가 되는 줄 알고 '이'(i) 발음을 남발하여 학생들에게까지 "아지로브"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당했던 아자로브 전 국무총리 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임을 기억하시라. 물론 우리가 우크라이나어를 쓴다고 해서 동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할 줄 모르는 우크라이나어를 갑자기 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몇 십 년 동안 편히 써 온 러시아어를 갑자기 우크라이나어로 바꾸는 끄이브(키예프) 시민들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거나 우크라이나인들의 마음을 얻을 사람들은 당연히 우크라이나의 국어를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우크라이나 땅에 사는 자들의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 반 정부 시위에 대해서는 일의 진전을 보아 다시 글을 쓸까 생각 중이다. 결론적으로 다시 말하자면, 우크라이나의 오늘날의 반 정부 시위, 곧 중서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이번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에 대한 반 정부 시위는 그저 간단한 소요가 아니다. 옛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체제를 회복해 보려는 러시아 연방의 뿌띤(PPUTIN) 대통령과 그 그늘로 들어가려는 야누꼬브이츠 우크라이나 현 대통령을 포함한 동부 우크라이나의 사람들에게 생명을 내놓고 피로 맞서는 조국 수호 전쟁이다. 그렇게 보는 것이 이 시국을 바르게 보는 것이리라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시민 시위대들이 왜 '혁명'(Революція, Revolution)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의 모종의 결단을 받지 않으면 수그러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대통령 반대 피켓 시위도 못하는 러시아,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를 계속 무시해 왔으며 거짓말을 일삼아 온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유로운 유럽연합으로 가서 나라 정치를 더 깨끗이 하고 자녀들의 미래를 열어갈 것인가를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피를 담보로 논하고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시위가 아닌 조국 수호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 결과가 기쁨일지 더 참혹한 어두움일지 아직은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우크라이나의 실제적인 독립을 바라고 수려한 우크라이나어가 우크라이나 전국에서 통용되기를 바란다. 이번 반 정부 시위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일로 우크라이나(UKRAINE)가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더 누리고 더 좋은 나라로 세워지기 바란다.   

 

 

 

2014년 1월 31일(금), 우크라이나 끄이브에서 고 창원(http://gohchangwon.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