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성령으로 사는 길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14: 15~24)



성경: 신약 성경, 요한복음 14: 15~24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설교: <<성령으로 사는 길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14: 15~24) 



사랑하는 아세아방송(FEBC) 애청자 여러분, 우리 나라 교회들처럼 자주 모여서 기도하는 백성들이 세상 어느 나라에 또 있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한 가지는 우리들은 그렇게 열심히 기도한 만큼 성령으로 살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멀리는 일본의 강제 점령기 때의 동방요배나 신사 참배, 가깝게는 크고 작은 교단들의 계속되는 분립, 그로 인한 수많은 술수와 분쟁,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이단들의 발흥 같은 일들이 넘쳐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는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라디아서 5: 19~21)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과연 성령으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요한복음 14장 15절부터 24절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하여서 우리 성도들의 성령으로 사는 길은 무엇인지를 잠깐 동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령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 좋은데, 그러면 '성령이 하시는 일은 또 무엇이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 요한복음 14장 16절과 17절에 있는 말씀을 찾아보면 그 답을 곧장 알게 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한복음 14: 16-17). 그러므로 성령은 '다른 보혜사'이십니다. 그렇다면 '보혜사'라는 말은 또 무슨 뜻일까요? 이것 역시 방금 제가 읽었던 성경 곧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대목을 주의 깊게 살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과 17절의 뒷 부분들을 다시 한 번 잘 보시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그리고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혜사'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우리들 속에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보혜사"라고 할 때의 '다른'이란 말은 어느 정도의 뜻을 갖고 있을까요? 그 답을 말씀드리자면, 이 말은 본래의 보혜사는 따로 계시고 성령은 그 원래 보혜사를 대신하게 될 보혜사란 뜻입니다. 사랑하는 아세아방송 애청자 여러분, 보혜사란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렇다면 제자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는 누가 그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지켜주었고 인도해 주었습니까? 예수님이셨지요! 그 말은 예수님이 원 보혜사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신의 보혜사였기 때문에 제자들과 끝까지 함께 할 수 없기도 했음을 시사하시면서, 앞으로 제자들이 받게 될 성령은 그렇지 않고, 제자들 각 사람 안에 계실 것이니 오히려 제자들에게 더 좋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신 요한복음 16장 7절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보혜사'라는 말은 우리들과 같은 육신을 입고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사시면서 그 제자들을 지켜주시고 가르쳐 주셨던 예수님이 원 보혜사이시고, 성령은 그 예수님을 대신하는 보혜사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지 않고 다시 오시겠다던 그 말씀을 예수님은 이와 같이 성령을 통하여서 이루신 것입니다(요한복음 14: 18).

자, 그렇다면 우리들이 살펴보아야 할 성령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우선 그 답을 찾아보지 않고도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께서는 원래의 보혜사이신 예수님이 하셨던 일들과 전혀 다른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은 예수님을 대신한 보혜사이시기 때문에 원 보혜사이신 예수님의 일을 이어서 하시는 것이지요.

구체적으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원 보혜사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많은 교회들은 성령으로 사는 일 또는 성령 충만하게 사는 일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 가운데서 종교적인 열심이 있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매달려서 그 결과로 얻어낸 특이한 경험들을 늘려가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요한복음이 말하는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대신한 보혜사로서 철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과 우리들이 그 예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도록 하는 일에 전념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부터 27절에 기록된 말씀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내실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요한복음 16장 13절과 14절에서도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보혜사이신 성령은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예수님의 것들을 가지고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처음부터 원 보혜사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었으므로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회상하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증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제 저는 성령으로 산다는 것이 먼 데 있지 않고 우리 책상 위에 있는 성경 말씀대로 사는 일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과 16장 1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14장 26절에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쓰여 있고, 요한복음 16장 13절에는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이나 오늘날의 우리들 안에 영원토록 계시려고 오신 보혜사 성령은 결코 자신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우리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들을 깨닫도록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닫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성령으로 사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5절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고, 또 이어서 21절에서도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셨으며, 또 이어서 24절에서는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의 소원인 성령으로 사는 길은 원래의 보혜사이셨던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 말고 다른 길이 결단코 아닙니다. 우리들이 밤낮없이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성경에 적힌 대로 겸손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우리들은 이제 깊이 깨달아야만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세아방송 애청자 여러분,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따라 주의 계명을 지키면서 사셔서 예수님께 사랑받는 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설교 후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이신 다른 보혜사를 보내셔서 성령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늘 우리가 성경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성령님을 따라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 설교의 우크라이나어 번역본: http://ChangwonGoh.tistory.com/3



2004년 9월 3일(금요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고 창원(http://GohChangwon.tistory.com)
 


* 이것은 2000년 1월 24일(월요일)에, '대한민국 전라남도 목포시 상동'에 자리한 아세아 방송 호남 본부(http://mokpo.febc.net)에 우리 가족(고 창원, 서 미영, 고 평안, 고 강산, 고 충만)과 그 때에 와 있던 여동생(고 ○○), 그리고 내가 섬기던 '대한예수교장로회 가곡교회'의 김 혜정 양이 초대받아 가서 담당자(주 연희)와 대담하던 중에 했던 짧은 설교를 손대서 쓴 것으로 그 다음 날인 2000년 1월 25일(화요일) 오후 2시부터 50분 동안 방송되었던 것 가운데 일부이다. 그 무렵 내 아버님(고 ○○)은 위암 말기의 고통을 이겨내시느라 고생하고 계셨는데, 이 설교와 대담이 녹음된 테이프를 담당 프로듀서(박 세주)에게 선물로 받아서 전해 드렸더니 두 주 정도를 반복해서 들으시다가 2000년 2월 7일에 평안히 우리 구주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가셨다. 그러므로 이 짧은 설교는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돌아가신 아버님(고 ○○)을 기억하게 하는 자료들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