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는 성도들은 다른 사람을 사귈 때 무엇을 보아야 할까? 나는 다른 사람을 사귀거나 그들과 일을 할 때 인격과 신학, 두 가지를 같이 본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면서 그것이 틀린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먼저, 다른 사람의 인격을 볼 때는 보통 세 가지를 크게 본다. 정직, 자존심, 예의가 그것이다. 둘째, 신학적으로 나는 역사적인 개혁신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복음주의자들을 가끔씩 용인한다.

정직, 내가 다른 사람과 사귀면서 가장 먼저 살피는 덕목이다. 어떤 사람이 무슨 큰 일을 해도 정직하지 않은 사람에게 나는 호의적이지 않다. 거짓말하는 자들은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무참히 파괴시키고 또 우리 주님의 나라에도 설 수 없으니 말이다.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신약 성경, 요한계시록 22: 15 뒷부분). 또 십계명에도 살인하는 죄나 거짓말하는 죄를 같은 계명으로 적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구약 성경, 출애굽기 20: 16, 신명기 5: 20). 그런 이유로 나는 거짓말하는 자들을 싫어한다. 허세, 허풍, 거만도 다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거짓이라고 할 테니 그것들도 정직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자존심, 자기 일에 충실하여 다른 사람의 것을 넘보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당당한 덕목이리라. 나는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하거나 자신을 공연히 낮추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재주를 주신다. 특히 예수 믿고 구원받아 자신의 백성이 된 신자들에게는 각각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섬기게 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일에 충실해야 하며 자존심을 바르게 세워야 한다.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이시자 구속주이신 거룩한 하늘의 존재자가 자신의 몸을 내주시고 택한 존귀한 자들이다. 우리의 존재 가치가 그렇게나 크다. 우리의 자존심은 그래서 높아야 한다. 그렇지만 자존심이 높다는 것과 교만하다는 것은 조금 다른 말이다.

예의, 혼자 살도록 만드시지 않고 여러 사람이 더불어서 살도록 우리 사람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으로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덕목이다. 세상은 자기 혼자 사는 안방이 아니다. 예의가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보이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는가! 세상을 살다 보면 생각 밖으로 예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얻어 돈을 많이 벌어서 결국 예쁜 아내를 얻는 것이나, 자신의 외모를 열심히 가꿔 돈 많은 신랑감을 만나는 것을 출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겠는가!

우리나라를 대표해 상대국에서 일하는 외교관이 검은 양복에 하얀 양말을 신은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있다. 또 선교사들이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경우도 가끔 보아 왔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우리나라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만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예전에 우리나라 어떤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 입장하셨을 때 반대당 국회의원들이 자리에 앉아서 거드름을 피우던 일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친절하고 정당하게 배려하는 예의를 익힐 필요가 있다. 그 한 예로 식사 때 입을 벌리고 음식을 씹어서 심하게 소리를 내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입 속의 음식물을 다 보이게 하는 잘못된 식사 예절을 고칠 필요가 있다. 그 방법은 입 안에 음식을 넣은 뒤에는 입을 다물고 음식을 씹는 것이다. 잘못된 식사 예절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다른 사람과 어울려 같이 식사를 하며 교제를 하게 될 때 좋은 분위기를 순식간에 망치고 자신의 품격을 심하게 떨어뜨리게 된다. 그러므로 서양인들과 어울려야 하는 동양의 성도들은 반드시 기억해 두시면 좋을 것이다.

요즘은 계몽주의(啓蒙主義, Age of Enlightenment, Aufklärung, Просвітництво)나 종교다원주의(宗敎多元主義, Religious Pluralism)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사는 시대이다. 계몽주의 철학을 신학에 접목한 슐라이어막허(F. Schleiermacher, 1768~1834)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자기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다. 또 어느 종교를 믿든지 다 구원에 이르른다고 가르치고 믿는 종교다원주의가 세상을 뒤덮었다. 그러므로 신학이나 교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시대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신학이 운동 경기처럼 그 결과가 바로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신학적인 일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이루신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야 드러나게 되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 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 가라!' 하리라."(신약 성경, 마태복음 7: 23). 나는 우리 구주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까지 내려져 온 정통 신앙, 곧 역사적인 개혁신앙(The Historic Reformed Theology or Faith)에 따라서 산다.

내가 그 역사적인 개혁신앙을 따른다는 것은 정통 교회들이 지켜 왔던 그 교리들을 믿고, 그것을 신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펴낸 신앙고백서들이나 교리 문답서들을 믿고 가르친다는 말이다. 따라서 나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인 「벨기에[네덜란드] 신앙 고백서」(Belgic Confession of Faith), 「하이델베르크 교리 문답」(Heidelberg Catechism),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같은 교리문답서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이런 생각을 갖고서 나는 다른 사람들을 상대한다.

결론적으로, 예수 믿는 성도들은 다른 사람을 사귀거나 다른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할 때 상대방의 인격과 사상을 같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평범한 직장 둉료를 넘어 더 친밀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나, 평생의 동반자인 결혼 배우자를 고르게 되는 경우처럼 다른 사람을 깊이 사귈 때는 더 그래야 하리라 믿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갖고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며 살아왔고, 혹 이런 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내 인격이나 주의 일을 허물 때는 다음과 같이 대응하여 나를 지켜왔다.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 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신약 성경, 데살로니가 후서 3: 14~15).

한 말씀 덧붙이면, 이 일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예수 안 믿는 동료나 같은 반 학생들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예수 믿는다 하는 성도들과의 관계에 해당하는 일이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고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 백성으로 사는 법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없다. 그들은 전도할 대상이며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대상이다. 그러나 예수 믿는 같은 성도와 교통할 경우에는 그에 대처하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정직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허무는 자들을 성도들은 구별하여 교회에서 내치고 교제하지 않아야 한다. 신약 성경인 고린도전서 5장 9절부터 13절 말씀은 그것을 잘 가르치고 있다.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 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신약 성경, 고린도전서 5: 12~13).

아는 사람이나 자신과 관계 있는 사람에게는 옳고 그름을 떠나 그저 치우치는 일에 빠른 우리 한국교회가 기억하고 실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저 아무나 사귀고 아무하고나 같이 일해도 되는 자들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야 하는 거룩한 성도들이니 말이다(신약 성경, 고린도전서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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