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1일(금요일) 밤에 우크라이나 제 5대 대통령인 야누꼬브이츠가 대통령궁을 비우고 도망가자 2014년 2월 22일, 토요일 오후에 우크라이나 국회는 대통령의 부재를 확인하고 그 권력을 접수하고 대통령 선거 일정을 잡았다. 그러므로 지난 2013년 11월 22일부터 시작된 시민과 야당의 반 정부 시위는 기쁜 끝을 보았다. 국회는 계속 내무부와 검찰청을 비롯한 주요 통치 기구의 책임자를 선임하여 국회의 결의로 임명하며 바로 이번 사태의 책임자들을 찾아 처벌하는 일정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그 범죄자들이 우크라이나 밖으로 도주할 수 없도록 국경수비대는 막고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끄이브(키예프)의 중심 마이단 독립광장에서는 축하와 장례식이 이어졌고 추모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국회는 이전의 각료들을 해임시키고 새 각료들을 선임하고 있다.

 

 

 

 

 

2014년 2월 23일(일요일), 현재 대한민국에서 나오는 이번의 우크라이나 반 정부 시위에 대한 기사들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에 국회 정부와 야누꼬브이츠 정부가 따로 있는 것처럼, 그래서 나라가 두 개로 갈라질 것처럼 염려하는 듯하다. 그리고 대한민국 외무부는 우크라이나를 여행 자제 국가로 지정한 듯하다. 그리고 이번 우크라이나 반 정부 시위에 대해 시민들이 폭도들이어서 경찰이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발포하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이번 시민들의 시위를 '테러리스트들의 난'이라고 말하며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의 시민 학살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들었다. 그에 대해서 먼저 응한다.  

 



첫째 우크라이나에 두 개의 정부가 서 있다는 말에 대해서 밝히자면, 그것은 현지 우크라이나(UKRAINE)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일이다. 그것이 러시아에서 나오는 소식을 인용했든지 우크라이나에 있는 전문가들들의 소식을 인용했든지 간에 둘 다 마찬가지이다. 우크라이나 소식은 우크라이나어를 하지 못 하고 러시아어로 걸러진 뉴스를 듣는 사람들의 소리보다는 차라리 영어로 나오는 유럽이나 미국의 소리가 더 맞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소식을 러시아 특파원에게 듣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마치 독도 문제를 일본에서 말하는 것을 대한민국의 의견인 양 세계에 중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하나 제안하자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소식을 다루면서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의 이름을 쓸 때 러시아에서 나오는 기자들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지 마시라. 차라리 영어로 나오는 기사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이름을 그대로 읽어서 인용하시라. 그것이 우크라이나어에 가깝다. 지금 우리나라 기자들이 쓰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이름은 거의가 다 러시아어식 표기이다. 우크라이나어가 아니다. 한 예로 이번에 새 국회의장과 대통령 직무대행을 겸한 우크라이나 정치인은 뚜르츠이놉(Oleksandr TURCHYNOV)이다. 격음과 경음이 같이 사용되는 슬라브 언어 특성상 나는 '투르츠이놉'이라 안 하고 '뚜르츠이놉'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자에 따라서 '투르츠이놉'이나 '투르치노브' 정도로 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투르치노프'라고 쓰면 안 된다. 그런 우크라이나어는 없다. 그것은 러시아어이다. 우크라이나 사람을 러시아어로 쓰면 이상한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을 영어로 그대로 음역한 것이 아닌 중국어나 일본어로 발음된 우리 이름을 영어로 표기하여 다른 나라에 알린다고 생각하면 이 말이 이해가 되시겠는가? 내 글을 못 믿겠으면 적어도 대한민국에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우크라이나어과에 문의해 보시라. 우리나라에 우크라이나 연구자들이 없음을 아쉬워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이름을 쓸 때는 영어로 번역된 것을 그대로 읽어내는 것이 우크라이나어에 가깝다. 우크라이나 소식을 영어로 가장 빠르게 읽으시려면 다음의 우크라이나 신문이 좋다(http://www.kyivpost.com).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화폐는 '흐르이브냐' (гривня)이다. '흐리브냐'로 발음해도 되리라.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기자들이 쓰는 식으로 '그리브냐'나 '그리브나'라고 쓰면 안 된다. 그런 화폐 이름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스꽝스러운 말이다. 그것은 우크라이나의 화폐 이름을 러시아어로 읽은 것이고, 그 중 하나는 그것도 제대로 못 읽어낸 것이다. 영어로는 '흐리브냐' (hryvnya, hryvnia)이다. '그리브나' 화폐는 세상에 없다.  

 



둘째, 우리나라 외무부가 우크라이나를 여행 자제 국가로 정한 것은 그리 틀린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하나를 꼭 첨언한다. 우크라이나어를 쓰지 않는 동남부 우크라이나를 여행하는 것을 자제하기 바란다. 스킨헤드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 보셨듯이 잠재적인 스킨헤드, '띠뚜쉬끄이' (Тітушки)라는 깡패나 건달들은 거의 다 러시아어를 쓰는 러시아계 사람들이다. 이 일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러시아인들이나 러시아어가 통하던 나라에서 살다 오신 우크라이나에서 사는 우리 한국인들이 계실 수도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사실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리라 나는 생각한다. 우크라이니아어를 쓰는 사람들이 사는 중서부 우크라이나는 안전하며 훨씬 우크라이나적이다. 문화도 언어도 말이다. 그러므로 우크라이나를 여행하려면 중서부 우크라이나를 여행하시기 바란다. 지난번에 교육방송의 어떤 프로그램에서 우크라이나를 한 달 정도 취재해서 며칠 동안 방영하였는데 유감스럽게도 동남부 중심의 러시아적인 어정쩡한 우크라이나를 담아냈다. 다시 말하지만 동남부 우크라이나나 수도인 끄이브(키예프)로 오실 분들은 조심하시라. 특히 흑해 연안의 얄따(얄타)를 포함한 씸페로뽈 같은 도시가 있는 크르임(크림) 반도나 우크라이나 동부 지방의 도네쯔크, 루한스크, 하르끼브 등은 아주 조심하시기 바란다. 만약 그쪽에 사업 일정이나 여행 일정이 잡혀 있는 분들은 믿을 만한 현지 동행자가 없으면 취소하시라. 루한스크(Lugansk, Luhansk)에서는 총기 사고가  있었다.

 



셋째, 이번 우크라이나 반 정부 시위는 시민 시위대들이 먼저 폭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에 경찰의 진압과 시민 사살은 어쩔 수 없는 정당한 국가 공권력 행사라고 말하는 이들은 아마도 러시아 정부의 이야기만 듣는 사람들일 것이다. 또 혹시라도 우크라이나 안에서 사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러시아어로 방송되는 인떼르 텔레비전 같은 방송을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떼르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생방송에 나가 인떼르 방송이 석 달 동안 사실이 아닌 거짓을 전했다며 인떼르 방송은 무릎꿇고 방송해야 한다고 말하고 퇴장해 버린 라디야 빤낍(Lidiya PANKIV)이라는 여성 저널리스트의 소리를 들어 보시라(http://vikna.if.ua/news/category/ua/2014/02/22/16605/view). 그녀는 베르쿠트라는 특수경찰과 사귀던 여성이어서 아마도 그녀를 생방송에 초청한 듯한데, 그녀는 예의는 갖췄지만 사실을 말하고 퇴장해 버렸다. 그 인떼르 방송이 그 영상을 볼 수 없도록 하였기 때문에 유튜브로 연결한다(http://youtu.be/GRYG5VykykA). 

 

 

 

 


자, 이제, 이번 일의 핵심 책임자, 곧 100명이 넘는 시민을 저격수의 총으로 살인한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 반 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유도 나의 다른 글에 길게 설명하였듯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http://gohchangwon.tistory.com/726). 무슨 일이든 이유를 알아야 그 과정도 알기가 쉽고 그 결과도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뒷처리도 어떻게 진행될지 알게 될 테니 말이다. 특히 러시아(RUSSIA)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것이 공식적인 러시아 외무부나 정부의 것이라도 옳지 않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밝혀둔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이번 반 정부 시위의 이유를 다시 한 마디로 말하면 친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역사, 문화를 부정하고 러시아화 정책을 펴오다가 지난 2013년 12월 21일에 전임 대통령이 논의해 왔던 유럽연합(EU)으로 들어가는 정치 일정을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뿌띤 대통령이 주도하는 구 소련 세계로 들어가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제 2의 독립운동, 우크라이나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일어선 것이다. 이것은 대통령 부정선거 같은 국내의 일로 시민들이 일어났던 2004년 겨울의 오렌지혁명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나라의 통치권을 다시 러시아로 되돌리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일각에서 어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번의 반 정부 시위를 철없는 데모데들의 난동으로 폄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렇게 말하는 러시아 정부나 한국인들은 자신이 이번 일을 바르게 판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마치 세계적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인 김 연아 선수가 이번 2004년 2월 23일에 막을 내린 소치 겨울 올리픽에서 은메달을 받도록 하고 실력과 매너가 부족한 러시아 선수에게 점수를 몰아줘서 금메달을 얻도록 힘을 쓴 러시아인들의 비신사적이며 정상적이지 못 한 일처럼 말이다. 더구나 기독교인들이라면 더 이 우크라이나 반 정부 시위에 대해 바른 판단을 하시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란다. 세상에 우리들이 다 수납할 수 있는 일만 있던가! 설령 우리들이 수납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을지라도,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지라도 발생한 사실을 곡해하지는 마시라. 거짓말은 십계명에서는 살인죄와 같은 죄이다. 

 



자, 이번 반 정부 시위의 중간 과정은 내가 글이 아닌 사진을 위주로 올린 나의 다른 글을 보시라(http://gohchangwon.tistory.com/732). 언젠가 이 우크라이나 반 정부 시위에 대해서는 차분하게 제대로 된 글을 쓸 수도 있으리라. 다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여러 신문이나 매체들의 우크라이나 사정을 잘 모르는 듯한 글들에 대해 이렇게라도 가닥은 잡아야 할 듯하여 덜 다듬어진 글을 공개한다. 약속하는 것은 이 글은 앞으로 계속 다듬어가고 보충해 갈 것이다. 그리고 사진이나 영상 자료도 되도록 더 많이 올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다 읽으셨더라도 다시 더듬어보셔도 괜찮을 것이다.  

 

시위가 시작된 이래 올레흐 땨흐느이복(Oleg TYAHNYBOK)이 이끄는 자유당과 비딸리이 클르이츠꼬(Vitaliy KLYCHKO)가 이끄는 우크라이나 민주개혁동맹의 노선은 강경하였다. 특히 끄이브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셰브첸꼬 가로수길 1번지에 자리한 레닌 동상을 '쁘라브이 쎅또르' 회원들이 주도하여 끌어내려 떨어뜨리고 이번 시위의 최전선에 선다. 방패와 나무 몽둥이로 보호 장구를 갖춘 프라브이 쎅또르(Правий сектор; 우익 진영)의 젊은이들은 시민들의 최전선에서 특수 경찰들과의 접전에도 앞장을 섰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평화적인 반 정부 시위를 진행하던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끄이브(키예프) 마이단 독립광장에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은 2014년 11월 30일에 독수리의 일종인 '베르꾸트' (беркут, berkut)를 부대 이름으로 쓰는 특수경찰들을 동원하여 진압봉으로 시민들을 공격한다. 심지어 외국 기자들도 공격받고 심하게 다쳤고, 시민들이 쫒기자 일반 경찰들이 시민들에게 피할 길을 열어줄 정도였다.

 

그렇게 해를 넘기고 2014년 1월 16일에 대통령이 속한 지역당 의원이 의장이었던 국회는 야당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싸우면서 손을 드는 방식으로 시위법을 고쳐서 시위 자체를 거의 전면적으로 못 하게 막는다. 그래서 마이단 독립광장에 있던 시위대들이 국회의사당으로 진출하려 한다. 그래서 흐루셰브스꼬호 거리의 끄이브(키예프) 디나모 프로 축구경기장 정문 옆에서 경찰에 막혀 서로 진을 치고 대치하게 된다. 그러다 2014년 1월 19일(일요일) 밤에 큰 격돌이 일어나 경찰의 자동차가 불타고 시민들이 많이 다친다. 그리고 2014년 1월 22일(수요일)에 첫 시민 사망자가 발생하여 네 명의 시민이 죽는다. 높은 건물 위에 있던 우크라이나 베르쿠트 특수경찰 저격수들의 소행이었다. 

 

 

 

 


경찰이 시민을 사살한 사실과 시위하던 청년 한 명을 때리고 옷을 다 벗겨 우크라이나의 독립운동가인 꼬자크의 수장이 들었던 홀처럼 얼음을 깨는 삽을 쥐어주며 러시아어로 조롱한 영상이 우크라이나 전국에 알려지자 서부 우크라이나의 시민들이 일어나 각 주 정부 청사를 장악한다. 그리고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의 지지 지역인 동남부 우크라이나에서까지 사망한 시위자들을 애도하고 경찰의 시민 살해를 항의한다. 무엇보다 동남부 네 곳만 빼놓고는 거의 전국적인 주 정부 청사 점거나 항의에 놀란 대통령은 그제서야 시위대에 화해의 뜻을 전한다. 그래서 2014년 1월 28일(화요일)에 러시아인이었던 므이꼴라 아자로브(Mykola AZAROV) 국무총리가 사임하고 시위법을 취소한다. 

 

 

 

 


2014년 2월 16일(일요일)에 그로부터 보름쯤 전인 2013년 1월 29일엔가 국회에서 수감자들을 석방하는 안이 가결되었던 것에 비추어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이번 시위에서 경찰에 잡혀 수감 중이던 수 백 명의 시위자들 석방하고 끄이브(키예프) 시청사를 점거하고 숙소와 부상자 치료로 사용하던 청사에서 시위대들이 다 철수하기로 한다. 그 일은 서방 중재자에 의해 시위대 대표가 싸인하고 후에 볼로드이므이르 마께옌꼬 끄이브(키예프) 시장이 싸인을 하여서 이루어진다(http://youtu.be/O1lJPl7m7Hg).

 

 

 

 


그러나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을 믿지 못 한 시민 시위대들의 일부는 마이단 광장에 남아서 시위를 이어간다. 그리고 국회의사당으로 진출하는데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경찰의 방어에 막힌다. 그래서 시민 시위대들은 마이단 광장에 또 모인다. 



 

그러자 2014년 2월 18일(화요일), 밤에 우리나라로 하면 서울의 광화문 네거리나 서울시청 앞 광장 정도 되는 오렌지혁명의 장이자 우크라이나 민주주의의 장인 마이단 독립광장에 집결해 있던 시민 시위대들을 한꺼번에 소탕하기 위하여 야누꼬브이츠 정부는 탱크 부대를 포함한 독수리의 일종인 '베르꾸트' (Беркут, Berkut)를 부대 이름으로 쓰는 특수경찰들을 역시 동원시킨다. 그래서 시민 시위대들은 자동차 타이어와 여러 가지 나무 집기들을 태우며 방어선을 구축하고 추위를 달랜다. 2014년 2월 18일, 화요일, 그 날 밤 우크라이나의 중심, 끄이브(키예프)의 마이단은 밤이 새도록 불바다였다.

 

 

 


 

2014년 2월 19일(수요일)과 20일(목요일)에 마이단 독립광장에 부근에는 그 전과는 달리 저격수들이 공개적으로 몰려다니며 시민을 사살하였고, 독립광장 뒷쪽에 높이 서 있는 '우크라이나 호텔'의 객실에서도 저격수들은 아주 편하게 시민 시위대들에게 소리나지 않는 방음 장총으로 사격을 가했다. 그래서 시민 시위대들이 80명 정도가 사망하였다. 특히 목요일, 2014년 2월 20일에 그 일이 집중되었다. 그래서 '피의 목요일'이라고 부른다. 그 증거 영상이다(http://youtu.be/IbQk-0eQzFo, http://youtu.be/bWOZ77Ry6-o). 그러자 유럽연합에 속해 있는 주요 국가 외무부장관들이 급히 우크라이나로 와 밤중에 대통령궁에서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을 만난다. 그리고 합의문을 만든다.

 

 

  

 


 

2014년 2월 20일(목요일)에 끄이브(키예프) 시장인 볼르드이므이르 마께옌꼬(Voldymyr MAKEJENKO)는 시민을 사살하는 대통령과 함게 할 수 없다며 대통령이 속했던 지역당을 떠나 시민 시위대의 편에 선다(http://youtu.be/COfE2C1z9ls).

 

 

 

 


2014년 2월 21일(금요일), 낮 12시쯤에 우크라이나 대통령궁에서는 야누꼬브이츠 대통령, 세 사람의 주요 야당 수장들(비딸리이 클르이츠꼬, 아르쎄니이 야쩨뉵, 올레흐 땨흐느이복), 유럽연합 주요국들의 외무부장관들이 야누꼬브이츠 쪽의 르이박 국회의장 등이 배석한 가운데 합의문에 싸인을 한다. 그것은 우크라이나 헌법을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도록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바꾸기 전인 2004년 시절로 되돌리고, 올 12월에 대통령선거를 치르며,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에 넘긴다는 것이었다 한다.

 

 

 


 

반면 그 2014년 2월 21일(금요일) 오전부터 우크라이나 국회에서는 볼로드이므이르 르이박(Volodymyr RYBAK) 의장이 회의를 진행하여 국정을 풀어가는데 의결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크라이나 헌법을 2004년으로 되돌렸다. 둘째,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러시아의 뿌띤(PUTIN)처럼 계속 대통령을 하려고 그의 정적인 율리야 뜨이모셴꼬를 공무 중 직권남용 혐의를 씌워서 감옥에 보냈는데, 그 울리야 뜨이모셴꼬를 사면시키는 것이었다. 셋째, 이번 유혈 사태의 책임을 물어 비딸리이 자하르첸꼬(Vtaliy ZAKHARCHENKO) 내무부 장관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검찰총장을 해임시켰다. 그리고 국회와 대통령궁을 지키던 경찰들을 자기 부대로 복귀시킨다. 대통령이 속한 당의 의원이 국회의장인데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 전 날부터 대통령이 속한 지역당 의원들이 속속 탈당하고 시민의 편으로 돌아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야당이 의회 의석의 절반 이상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반 우크라이나 정책을 이어왔던 당에 속해 있었지만 그래도 시민의 생명을 더 이상 희생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여 당을 떠나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야당과 함께 의회에 선 그들에게도 공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누꼬브이츠가 군을 동원하려고 할 때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대통령의 명을 듣지 않은 군 수뇌부에게도 공이 있다. 

 

그러자 대통령궁에 있던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은 자리를 지키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야당 책임자 세 사람이 야누꼬브이츠 대통령과 합의를 하고 나와 마이단 광장에 서자, 마이단 독립광장에 모여 있던 수 만 명의 시민 시위대들은 이번에 저격수들을 동원하여 무참히 시민의 생명을 앗아간 그 책임을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에게 물은 항목이 없기 때문에 야당 수장들과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유럽 주요 국가 외무부장관의 조정으로 합의한 정치 일정에 수긍하지 않겠다며,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에게는 세 가지 중 하나의 길이 있음을 밝힌다. 첫째, 스스로 사임하는 것, 둘째, 재판을 받는 것, 셋째, 가다피의 운명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어 야누꼬브이츠는 대통령궁을 비우고 사라진다. 기자들이 쫒아 그를 찾았는데, 나중에 들리는 소리는 자신의 지지기반인 동부 우크라이나 하르끼브의 어느 골프 연습장에 숨어있었다고 한다.

 



2014년 2월 22일(토요일), 국회는 사임서를 서면으로 제출한 르이박(Volodymyr RYBAK) 의장 대신 자유당 소속인 루슬란 꼬슐르인스끄이(Ruslan KOSHULYNSKIY) 제 2 국회부의장의 인도로 새 국회의장으로 올렉싼드르 뚜르츠이놉(Oleksandr TURCHNOV)을 선출한다. 그리고 그 전 날 통과한 국회의 결의들에 대해 대통령의 싸인을 받아 정치 일정을 계속 이어가려던 국회는 대통령이 대통령궁에서 도망가버려서 정치 일정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책임있는 사람들을 가운데 하나이며 대통령과 합의문에 싸인을 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인 아르쎄니이 야쩨뉵(Arceniy YATSENYUK) 의원이 야누꼬브이츠 대통령과 통화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리고 국회는 헌법을 2004년의 것으로 되돌리는 결의를 그 전 날에 이어 다시 한다. 그리고 감옥에 가 있던 율리야 뜨이모셴꼬(Yuliya TYMOSHENKO)의 즉각적인 석방을 결의한다. 그리고 계속 국회는 국내 치안을 담당하며 경찰의 통치권자인 내무부 장관에 아르쎈 아바꼽(Arcen AVAKOV)을 선임하고, 국가안전국장에 발렌뜨인 날르이바이첸꼬(Valentyn NALYVAYCHENKO)를 선임하였으며, 검찰총장에 올레흐 마흐니쯔끄이(Oleg MAKHNITSKIY)를 선임하였다(http://youtu.be/ihiEzIVIdJY).

 

 

 

 


그리고 점심나절에 야쩨뉵 의원이 가까스로 사라진 야누꼬브이츠 대통령과 통화에 성공하였는데,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으로부터 뜻 밖의 말을 듣게 된다. 그것은 '지금의 정치 일정은 야당과 시민 시위대들이 합법적으로 뽑힌 자신의 대통령 임기를 빼앗은 강도들의 소행이어서 자신은 어떤 문서에도 싸인하지 않을 것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 내용의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의 발언이 유비아르(UBR) 우크라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전 우크라이나에 방송된다(http://youtu.be/W87TuQ7ejbY, http://youtu.be/vH9jSSQrmVg). 자신의 직무를 버리고 도망간 대통령의 부재를 확인하고 동부 하르끼브의 장소를 밝히지 않는 곳에 숨어서 인터뷰하며 국회를 강도들로 비유한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의 발언을 확인한 국회는 그로부터 한두 시간 후인 2014년 2월 22일(토요일) 오후 5시쯤에 대통령이 직무를 버리고 대통령궁을 떠나 사라져버린 것임으로 국회는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한 것으로 간주하고 국가 통치를 위해 대통령 선거를 다가오는 2014년 5월 25일(일요일)에 실시한다고 결의한다. 본래 그는 하르끼브에서 2014년 2월 22일엔가 열린 동남부 지역 의원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그곳에 참석하지 않고, 장소도 밝히지 않은 어느 곳에서 우크라이나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인터뷰를 하여 그 전 날 자기 손으로 싸인한 것대로 헌법을 2004년으로 되돌리는 일을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곧 2014년 2월 22(토요일)에 바로 내무부와 검찰은 직무를 시작한다. 특히 뚜르츠이놉 의장과 내무부 장관은 내무부를 관장하고 경찰을 통제권 아래 넣는다. 그리고 국경수비대까지 새 정부의 통치에 따라 외국으로 도망가려던 이번 시민 학살의 책임자 중 한 명인 내무부장관이나 다른 이들,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우크라이나 국경을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은 자기 수행원 몇 명과 함께 움직이며 비행기로 자기가 태어난 지역인 동부 우크라이나의 탄광지대로 세계 지리에서도 유명한 도네쯔크의 국제공항에서 2014년 2월 22일, 토요일에 돈을 주며 출국하려 했지만 저지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일은 우크라이나 경찰이나 국경수비대가 즉각 새 정부의 명령을 수납한 결과이다. 반면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직권 남용이라는 죄목을 씌워 자기 지지기반의 도시인 하르끼브의 감옥에 가뒀던 율리야 뜨이모셴꼬(Yuliya TYMOSHENKO) 전 국무총리는 국회의 결의에 따라 곧장 감옥에서(병원) 나와 수도인 끄이브(키예프)로 와서 밤중에 휠체어에 앉아 마이단에서 연설을 한다(http://youtu.be/GtE9-qSqo7U). 

 

 

 


 

그리고 다음 날인 2014년 2월 23일(일요일)에 국회는 계속 이전 내각의 교육부장관, 외무부장관, 보건부장관을 해임한다. 그리고 새 국회가 결의한 법안들을 발효시키려면 대통령의 싸인이 꼭 필요한데 대통령이 사라지고 없으니 국가 정치 일정이 돌아가지 않게 되었음을 인지하고 결국 대통령 직무대행자로 국회의장인 올렉싼드르 뚜르츠이놉(TURCHYNOV) 의장을 선출한다. 그래서 2014년 5월 25일의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올 때까지 뚜르이츠놉은 국회의장은 물론이거니와 대통령 직무 대행까지 겸한다.

 

 

 

 


그리고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이 2013년 7월인가 8월엔가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어와 동격으로 올려서 각 주 정부가 자기 주에서 사용할 공식 언어를 결의할 수 있도록 하여 사실상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어와 마찬가지로 공식 언어로 채택하여 우크라이나어를 사언어로 만들려고 했던 그 언어에 관한 법안을 철회시켰다. 이제 우크라이나에서의 공식 언어와 국어는 오직 우크라이나어 뿐이다. 이제 방송국들이나 신문도 우크라이나어만 쓰게 될 것이다. 예전처럼 영화관에서도 더빙 언어가 우크라이나어가 될 것이다. 학교에서도 물론 러시아어로 수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일에 대해서 러시아는 오늘 즉각 반발하고 나섰지만 그것은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일이 이 정도 되면 전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이 속한 지역당과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그 지역 사람들은 이번의 이 새 정부의 정치 일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여전한지가 궁금하실 것이다. 동부 우크라이나의 하르끼브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방송 인터뷰도 하겠다던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은 하르끼브(Kharkiv)에서 떠나 아마도 도네쯔크에 있는 듯한데, 그곳은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이 태어났고 주지사를 지냈던 도시인데 그곳에서도 역시 그의 전용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하도록 2014년 2월 22일(토요일)에 막았다는 뉴스가 뜬다. 그리고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이 속한 지역당의 대표인 올렉싼드르 예프레몹(Oleksandr YEFREMOV)은 2014년 2월 24일(일요일) 방송 연설에서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의 해외 도피에 찬성하지 않고 대통령은 자신들의 의견을 수납하지 않았다며 대통령과 선을 긋고 70명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의원을 위해 지역당을 수습한다(http://youtu.be/WUKZwSPCQFk). 그러므로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이 중서부 우크라이나와 두 동강이로 나눠지는 일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일정 기간 동안 그 지역의 일정한 사람들의 불만은 폭주할 것이다. 어제 우크라이나의 가장 동쪽 지역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루한스크(Luhansk) 시에서는 이번 반 정부 시위에 동의하는 지지자들 한 사람을 총으로 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경찰과 군인만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데 그 일이 어찌 된 것인지는 참으로 모를 일이다. 

 

 

 

 


지금 올렉싼드르 뚜르츠이놉 국회의장이 이끄는 국회는 내각을 구성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적어도 2014년 2월 25일까지 내각 구성을 완료할 생각으로 쉼 없이 달리고 있다. 이제 '2014 소치(Sochi) 겨울 올림픽'이 끝났으니 러시아(RUSSIA)의 뿌띤(PUTIN)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지 간섭을 하려 할 것인데, 이미 적당한 때를 그는 놓쳤다 하리라. 그리고 돈을 줬다 뺏었다 하는 식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을 늘 그래 왔듯이 조롱한 것에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들은 격분하고 있다. 반면 유럽연합이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우크라이나의 이번 정치 일정에 동의하고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재정적인 후원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의 우크라이나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일에 대해 유럽연합은 기뻐한다. 이번에 우크라이나의 중부 도시들 가운데 부드러운 성품 탓으로 그동안 레닌 동상을 허물지 않았던 지역들에서도 대다수 레닌 동상을 허물어 버렸다. 그리고 중동부 도시인 드니프로뻬트로브스크(Dnipropetrovsk) 시에서는 레닌 광장의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하르끼브(Kharkiv)에서는 전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을 지지하며 강경 발언을 일삼던 시장의 시청사 출입을 막고 있다고 한다. 야누꼬브이츠는 독재자, 살인자의 길로 들어선 셈이다. 친 러시아인들이자 야누꼬브이츠 지지자들이었던 동부 우크라이나 사람들까지 그렇게 인식하고 있나 보다.

 



엊그제, 곧 2014년 2월 22일(토요일)부터 끄이브(키예프) 주의 드니프로(Dnipro) 강변에 있는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의 별장 겸 저택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견학지로 알려지고 있다. 국가가 부도 사태로 가느냐 마느냐 하는 이 시국에 그와 그의 아들들이 얼마나 사치스런 생활을 했는지를 온 국민이 똑똑히 보고 있다(http://youtu.be/J4oJc6lhWI0). 그동안 기자들이나 야권이 말했던 것이 다 사실임을 온 국민이 보고 있다. 그러므로 야누꼬브이츠의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러시아의 뿌띤 대통령도 야누꼬브이츠를 청하지 않았다 한다. 야누꼬브이츠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도망자가 되었다.  

 

 

 

 


이렇게 우크라이나의 반 야누꼬브이츠 시위, 정확하게는 반 러시아 시위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나와 우리 가족을 걱정하시는 분들이나 또 우크라이나(UKRAINE) 사태를 염려하시는 분들은 어느 정도 안심하셔도 될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이번 반 정부 시위는 그렇게 기쁜 결말을 보았지만 100 명 정도의 시민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사망하였기에 우크라이나 끄이브 마이단 독립광장은 지금 추모 열기로 가득하다(http://youtu.be/M7T1gsMRrfI). 다시 덧붙이지만 이 글은 계속 보충할 것이다. 사진이나 영상도 증거로 더 덧붙일 것이다. 급박한 우크라이나 사태를 올바르게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듯하여 우리 국민들을 위해서 급하게 몇 글자 적었다.  

 

 

 

 


2014년 2월 24일(월요일)에 공산당의 당수인 뻬뜨로 쓰이모넨꼬(Petro SYMONENKO)의 다차(별장이나 주택)가 불에 탔다. 권총도 발견되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짐작이지만 러시아나 러시아 계열의 깡패들이 어떤 조종이나 지령을 받고 활동하며 이번 반 정부 시위의 반대편에 서 있던 인사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의 반 정부 시위대가 그렇게 반대 세력에게 폭력과 방화와 살인을 저지르는 것처럼 꾸미려는 것 같다. 지금 반 정부 시위대들은 함께 있었던 동료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일로 독립광장에서 바쁘고 또 시를 보호하는 일로도 바쁘다. 그들은 끄이브 시내도 아니고 변두리의 끄이브 주까지 찾아가 개인 재산에 불을 지를 만큼 어리석지 않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기도 하지만 자유(Воля)와 평화(Мир)를 사랑한다. 

 



참, 이 글에 쓴 우크라이나인들의 이름 중 소문자가 포함된 것은 이름이고 대문자로만 기록된 것은 성임을 밝힌다. 올림픽 같은 경기에서 선수들의 이름과 성을 구분하기 위해서 언제부턴가 성을 대문자로만 쓰고 있는데 나도 그것을 따랐다.

 



2014년 2월 25일(화요일)부로 이번에 시민을 학살한 내무부 경창청 소속의 특수부대인 '베르꾸트' (Беркут, Berkut) 부대는 이제 없어지게 되었다. 아르쎈 아바꼽 내무부장관(https://www.facebook.com/arsen.avakov.1)이 그 부대를 없애는 법안에 이미 싸인을 마쳤다 한다. 살인 부대를 없애 경찰의 이름을 지키게 되었다.

 

 

 

 


2014년 2월 26일(수요일) 현재, 크르임 자지공화국의 수도인 씸페로뽈(Simferopol)의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 건물 앞에서는 두 진영의 집회가 부딪치고 있다. 크림을 러시아로 돌리고 싶은 시위대와 크림을 우크라이나에 남기려는 시위대로 말이다. 러시아 연방의 국회의원들이 엊그제 크림을 방문하여 크림에 거주 중인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러시아의 여권을 쉽게 발급해 주겠다 했다 한다. 그래서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을 러시아 국민으로 만들고 나중에 자기 국민이 크르임 반도에 산다고 군사력을 동원할 계획을 세우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의 뿌띤(PUTIN) 대통령의 소망과는 달리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크라이나 크르임 자치공화국 의회(Верховна Рада Автономної Республіки Крим; http://www.rada.crimea.ua) 의장인 볼로드이므이르 안드리요브이츠 꼰스딴뜨이놉 (КОНСТАНТИНОВ Володимир Андрійович)은 크르임 자치공화국은 우크라이나를 떠나는 안을 국회에 제출할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http://ua.korrespondent.net/ukraine/politics/3311685-u-krymskomu-parlamenti-ne-stavliat-pytannia-pro-vykhid-krymu-zi-skladu-ukrainy-spiker-konstantynov). 그래서 러시아의 뒷조종을 받거나 아니면 러시아쪽으로 가고 싶은 진영과 우크라이나에 남으려는 진영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충돌한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도 이번의 반 정부 시위가 제 2의 독립운동, 우크라이나 조국수호 전쟁이었음을 우리는 다시 분명하게 확인하게 된다. "슬라바 우크라이니!" (Слава Україні!; 영광이 우크라이나에!), "헤로얌 슬라바!" (Героям Слава!; 영광이 영웅들에게!), "크르임 네 로씨야!" (Крим не Росія!; 크르임은 러시아가 아니다!), "야 흐로마댜느인 우크라이느이!"(Я громадянин України!; 나는 우크라이나 국민이다!)란 소리가 크르임 땅에서도 크게 울려퍼지고 있다. 물론 한쪽에서는 "크르임 라씨야!" (Крым Россия!; 크르임은 러시아이다!)란 소리도 참으로 우렁차다.

 

 

 

 


참고로 기록하자면, 크르임 지역은 이백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사는데 그 중 백만 명 정도가 러시아인종이고 우크라이나인은 오십만 명 정도이다. 그리고 타타르인종이 이십만 명 정도 된다(http://2001.ukrcensus.gov.ua/eng/results/general/nationality/Crimea). 그런데 크르임 타타르인들은 계속 우크라이나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또 참고로 밝히면 크르임(Крим, Крым, Crimea) 지역은 본래부터 러시아 땅이 아니다. 근현대 시기에 러시아가 점령했다가 결국 우크라이나에 돌려준 우크라이나 영토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나 친 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국민들 가운데 크르임(Crimea)의 역사를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크르임 역사를 좀 적는다. 먼저 크르임 역사는 위키 페디아의 글을 좀 읽으시라(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Crimea). 크르임은 항구 도시인 쎄바스또뽈(Sevastopol)에 남아있는 헤르쏘네스(Chersonesos) 그리스 유적이 증명하듯이 기원 전(BC; Before Christ) 7세기 경부터 타우리스 헤르쏘네스(Taurica Chersonesos or Chersonesus Taurica)란 그리스의 식민지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기원 전 2세기부터 기원 후(AD; Anno Domini) 3세기 경까지 로마 제국(Roman Empire)의 영토가 된다. 그리고 그 후 고트(Goths) 족, 훈(Huns) 족, 불가르(Bulgars) 족, 카자르(Khazars) 족의 침략을 받다가 9세기 말엽부터 13세기 중엽까지 이어졌던 우크라이나의 전신인 끄이브 루스(키예프 루시; Kyivan[Kievan] Rus; http://en.wikipedia.org/wiki/Kievan_Rus')의 스뱌또슬라브 왕자 1 세(Prince Sviatoslav; http://en.wikipedia.org/wiki/Sviatoslav_I_of_Kiev)에게 10세기 중반에 점령당하여 끄이브 루스의 영토가 되고, 주후 988년에 그 크르임의 쎄바스또뽈의 헤르쏘네스에서 끄이브 루스의 볼로드이므이르 대공(Volodymyr Great)이 세례를 받는다. 그러다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 킵차크(Kipchaks), 몽골(Mongols)의 지배를 받던 크르임은 13세기에 제노아 공국(Republic of Genoa)의 지배 아래 든다. 그리고 1441년부터 1783년까지 지금의 크르임 타타르인들의 조상인 크르임 한(Crimean Khanate)의 지배를 받는다. 이어 1783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 제국(Russian Empire)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1922년부터 1991년까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의 지배를 받는다. 그 중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국경 지역인 러시아의 쿠르스크 주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의 탄광 도시인 도네쯔크로 열 네 살 정도에 이사하여 삼십 대 후반까지 지냈기에 우리가 보통 우크라이나인으로 알고 있는 러시아의 니끼따 흐루시쵸프(Nikita KHRUSHCHEV, 1894-1971)가 서기장으로 재직하며 권력을 행사하던 1954년 2월 19일에 소련 최고의회는 크르임 반도를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공식적으로 넘긴다. 그래서 1991년에 소련에서 열 다섯 나라가 독립할 때 크르임은 우크라이나로 서게 된다. 그러므로 역사 연표를 따지자면 우크라이나의 전신인 끄이브 루스가 러시아의 전신인 러시아 제국보다 먼저 크르임을 접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크르임 타타르인들보다도 더 먼저 크르임(크림)을 접수하고 다스린 것이다. 그런 면에서 크림(Crimea)은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 땅이다.

 

그러나 끄이브 루스(키예프 루시)를 우크라이나만 아닌 벨라루스, 러시아의 역사로 넓혀서 보면 이야기가 더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얼마나 다른가를 알 수 있는 비교도를 한 장 올린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는 끄이브 루스를 이어받고 있지만, 러시아는 칭기스 한(Genghis Khan)의 후예들이었다가 내분으로 몽골(Mongol Empire; http://en.wikipedia.org/wiki/Mongol_Empire) 제국에서 나와 본국과의 교류를 끊고 동유럽에서 '황금의 약탈자'들로 군림했던 킵차크 한(Golden Horde, Золота Орда, Золотая Орда)의 문장을 이어받은 것을 아실 수 있으리라.

 

 

 

 

그 나머지 동부 지역, 곧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 지지 지역은 조용하다. 그들도 야누꼬브이츠의 두세 가지 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비겁함, 부족한 자질, 그리고 부정축재를 말이다. 하르끼브는 시장이 시청사에 들어갈 수 없도록 시위대가 막고 있고, 뽈따바나 쥐또므이르에서는 이미 선거를 통해 친 야누꼬브이츠적인 시장을 바꿨다. 그리고 자뽀리쟈인가 드니프로뻬트로브스크인가는 친 야누꼬브이츠적이었던 시장이 사임하였다. 지역당은 야당이 되었고, 야누꼬브이츠를 끌어내린 새 정부가 힘을 행사한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국 주요 도시들의 중앙 광장에 보통 서 있는 레닌 동상이 우크라이나 전국에서 계속 거꾸러뜨려지고 있는데 특히 중부 우크라이나에 집중되어 있다(http://andriy-lopata.livejournal.com/24720.html).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대체로 러시아어가 아닌 우크라이나어를 쓰며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 살면서도 온화한 마음에 레닌 동상을 부수지 않았던 중부 우크라이나인들이 이미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이 실각하고 도주했는데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구 소련의 상징이자 현재 러시아의 향수인 레닌 동상을 무참히 끌어내리고 짓밟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의 반 정부 시위가 단순한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 반대가 아닌 친 러시아적인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 반대였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동부나 서부에 레닌 동상 파괴가 적은 것은 서부는 이미 옛날에 다 없앴기 때문이고, 동부는 아직까지는 레닌 동상에까지는 손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부나 심지어 크르임 반도에서까지 레닌 동상 파괴가 시작되었음을 보게 된다. 이 일로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쥐또므이르에서 레닌 동상을 꺼꾸러뜨리는 영상을 한 예로 먼저 소개한다(http://youtu.be/Wb-cIt4o2QQ). 또 우크라이나 5번 텔레비전에서 한 꼭지의 뉴스로 만든 것으로 다른 여러 도시에서 레닌의 동상이 거꾸러지는 것도 더불어 소개한다(http://youtu.be/U0ZRvXcPFNQ).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국 도시의 거리 이름에 '레닌'이 들어간 거리들도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 있음도 널리 알려드린다(http://ukrstream.tv/timeline/entry/387#.Uw9xddLy_IU).

 

 

 

 


2014년 2월 26일(수요일) 같은 날 저녁에 새 내각 장관 후보자들과 함께 올렉싼드르 뚜르츠이놉 국회의장 겸 대통령 직무대행자는 끄이브(키예프) 우크라이나 마이단 독립광장의 시민들 앞에 섰다. 새 내각의 수장이 될 국무총리 후보는 아르쎄니이 뻬트로브이츠 야쩨뉵(ЯЦЕНЮК Арсеній Петрович; Arseniy YATSENYUK)이다.

 

 

 

 


2014년 2월 27일(목요일) 새벽 5시쯤에 우크라이나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수도인 씸페로뽈(Simferopol)의 정부 청사와 의회 의사당을 무기로 무장한 120명 정도의 정체 모를 사람들이 점령하였다. 그리고 의사당의 꼭대기에 있는 깃발 게양대에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깃발과 함께 그동안 있었던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리고 러시아 연방의 국기로 바꿔달았다. 일반 시민들이 총으로 무장하고 정부 기관을 점령하고 그 일을 하였다? 시민들은 어디서 총기를 수납하였을까? 만약 시민이 아니라면 그들은 누구일까? 이 일은 더 지켜보면 러시아와의 연계성이 나올 것이라 나는 짐작한다.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이 러시아의 품에서 자신은 아직 임기가 남은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라고 외치고,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은 지속적으로 시위를 하며 정부 청사를 총기로 중무장하여 계속 지키게 하는 길을 러시아의 뿌띤 대통령이 택하려 하는지 지켜보자.

 

 

 

 


그동안 도주를 해 오던 전 우크라이나 제 5대 대통령이었던 빅또르 야누꼬브이츠는 하르끼브에서 도네쯔크로 그리고 크르임 자치공화국으로 피신하였는데 아마도 지금 러시아로 가지 않았나 싶다. 오늘 어떤 성명서가 크르임의 씸페로뽈에서 낭독되었는데, 야누꼬브이츠가 직접 얼굴을 내놓고 읽은 것이 아니어서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지만 야누꼬브이츠가 러시아의 보호 아래 들어갔기에 그런 성명서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상한 것은 이번의 크르임 정부 청사와 의회 의사당을 점령한 이들은 무장을 하였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시민들이 총을 소지할 수 없다. 이번의 시민들의 반 정부 시위에서도 보았듯이 시민들은 몽둥이나 돌로 싸운다. 그런데 시위자들이 총을 가졌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하겠는가? 2014년 2월 27일(목요일) 아침에 업무를 시작하며 새벽의 크르임 씸페로뽈의 일을 들은 우크라이나 국회는 이 일을 대처하느라 힘을 썼으며 뚜르츠이놉 국회의장 겸 대통령 대행자는 만약 쎄바스또폴에 있는 러시아 흑해 함대의 군인들이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 우크라이나 영토 안으로 들어오면 중대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 경고하였다.

 



그리고 내각을 구성하기 위하여 우크라이나 국회는 2014년 2월 27일(목요일) 오후 1시 50분부터 새 국무총리 후보인 아르쎄니이 야쩨뉵에게 후보자 연설을 들었으며 그리고 질의 응답을 마친 후 국무총리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나서 국무총리가 된 아르쎄니이 야쩨뉵은 내각 각 부 장관들을 소개하면서 지지를 호소하였다. 그래서 오후 3시가 좀 넘은 시각에 우크라이나 국회는 새 내각의 각 부 장관을 모두 인준하였다. 우크라이나 국무총리 웹페이지에서 그 사실을 확인하실 수 있다(http://www.kmu.gov.ua/control/en/publish/article?art_id=247059301&cat_id=244314975). 하나님께서 새 내각 국무총리와 각료들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시기를 빈다. 러시아 연방의 통치자인 뿌띤 대통령과 러시아 군사들의 비정상적인 손길이 우크라이나에 미치지 않기를 또 힘써 바란다.   

 

 

  

   


 

우크라이나 국회에서 새 내각을 인준하여 새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설립되자 볼로드이므이르 꼰스딴뜨이놉(Володимир КОНСТАНТІНОВ)이 의장으로 있는 크르임 자치공화국 의회는 무장한 사람들이 통제한 가운데 아나똘리이 모흐일룝(Анатолій МОГИЛЬОВ)을 실각시키고 새 내각 수장을 뽑았으며 대통령선거가 있는 2014년 5월 25일(일요일)에 크르임 자치공화국이 더 주도권을 갖고 자신들의 일을 결정할 수 있도록 국민투표를 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크라이나 헌법에 합치하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새 내각 수장은 쎄르히이 악쎄놉(Сергій АКСЕНОВ)이다. 

 

 

 

 


크르임 타타르인들은 러시아로 가는 일은 죽어도 없을 것이라 하고 또 러시아인들 가운데서도 우크라이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참 복잡한 정서를 지닌 땅이 크르임 반도이다(http://youtu.be/sFpAnMtAsPo).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크르임 주민들은 사도행전 17장 26절부터 27절 말씀을 읽으시면 좋겠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 하도다" (사도행전 17: 26-27; Дії 17: 26-27). 하나님께서 왜 소련을 흩으시고 열다섯 나라에 자유를 선물하셨을까? 오늘날 러시아의 뿌띤(PUTIN) 정부나 러시아 정교회의 일들을 보면 답을 알 수 있지 않을까?

 

 

 

 


2014년 2월 28일(금요일) 현재 러시아계 무장 청년들이거나 러시아 군인들이 총으로 무장하고 우크라이나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수도인 씸페로뽈의 공항과 러시아 흑해 함대가 임대해 쓰는 우크라이나 쎄바스또뽈 특별시 공항을 통제하고 있나 보다. 만약 러시아 군이 크르임 반도를 장악했다면 이 일은 복잡해진다. 우크라이나는 이 일을 어떻게 응대할지 살피며 텔레비전 뉴스를 계속 주시한다. 일단 영국 비비씨(BBC) 텔레비전의 인터넷 서면 뉴스로 연결한다(http://www.bbc.com/news/world-europe-26379722). 그리고 비비씨에서 만든 유튜브 영상도 좀 알린다(http://youtu.be/f6PHkbjj4qk).


 




2014년 2월 28일(금요일) 러시아 시각으로 오후 6시에 러시아의 남부 도시이자 우크라이나에 가까운 '로스토프 나 도누' (Rostov-na-Donu)에서 우크라이나의 네번째 대통령이자 제 5대 대통령이었던 빅또르 야누꼬브이츠(Viktor YANUKOVYCH)가 자신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라고 나타나서 기자 회견을 하였다. 아직도 자신이 합법적인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라는 그의 말을 들었다. 러시아 24 채널 텔레비전이 생중계하였다. 자, 이제 베일에 감춰졌던 야누꼬브이츠가 러시아에 있음이 드러났다. 자신의 나라에서 도망쳐 다른 나라에 앉아서 자기 나라의 언어인 우크라이나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는 야누꼬브이츠를 본다(http://youtu.be/S-jlNe4k02Y).  

 

 

 


 

스위스(SWISS)나 오스트리아(AUSTRIA)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은행은 야누꼬브이츠와 그의 아들의 계좌를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아이엠에프(IMF)의 구제 금융을 받아 자신과 자기 아들에게로 가져갔을 것이 확실시 되는 빅또르 야누꼬브이츠가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가까이 있음을 느낄 시간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뿌띤 대통령이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범인인 야누꼬브이츠를 어떻게 하려는지 두고 볼 일이다. 크르임에 있는 러시아계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러시아로 설 것을 촉구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대통령직 수호를 위해 러시아가 나서줄 것만 바라는 야누꼬브이츠를 우크라이나나 유럽의 조소나 압박 속에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를 러시아의 뿌띤 대통령은 재고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검찰 총장은 만약 야누꼬브이츠가 러시아에 있는 것이 확인된다면 민간인 대량 학살 혐의를 쓴 범인 신분인 그를 보내주라고 러시아 정부에 요청하겠다고 분명히 밝혔었다. 

 

자, 이제 우크라이나 크르임(Крим, Крым, Crimea) 문제를 러시아가 어떻게 풀어갈지 생각해 보자. 우크라이나는 미국(USA)에 영토 보전에 대한 말을 하기 시작하여 1994년에 우크라이나(UKRAINE)가 러시아(RUSSIA), 미국(USA)과 맺은 다자간 비핵화 협정을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핵을 폐기하는 대신 서방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기로 하였는데, 만약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를 말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우크라이나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확인하였다. 국가 부도 사태 해결을 위해 바쁜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제 이 일에도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세계에서 순수한 자국 기술로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은데 그 몇 개 나라 중의 하나가 우크라이나이다. 우크라이나의 비핵화 프로그램은 그동안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러시아 연방의 뿌띤 정부가 지금 시험을 하고 있다. 

 



2014년 3월 1일(토요일)에 우크라이나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내각 수장인 쎄르히이 악쑈놉(Сергій АКСЬОНОВ)는 러시아의 뿌띤(Putin)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리고 크르임 자치공화국 전체는 2014년 2월 27일(목요일) 새벽부터 친 러시아 계열의 무장 청년 또는 러시아 군인들이 통제하고 있다. 씸페로뽈 시내는 무장 러시아 군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순찰을 돌고 크르임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엄격한 통제와 검문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지금(2014년 3월 1일, 토요일 오후) 우크라이나 112 텔레비전(http://112.ua)의 실시간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 있는데(https://www.youtube.com/watch?v=m_PRECuV3-4) 씸페로뽈에서 친 러시아계 청년들이 벽에 넓게 붙여놓은 러시아 국기를 배경으로 앉아서 기자 회견을 하며 씸페로뽈은 안정적이며 시민들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할 정도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시민들은 러시아 국기나 러시아 국기 색깔의 하얀색, 파랑색, 빨강색 풍선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그러나 크르임 반도에 계시던 한국인들은 거의 끄이브(키예프)로 올라오셨나 보다. 반면 올렉싼드르 뚜르이츠놉 대통령 권한 대행은 쎄르히이 악쑈놉이 법을 어기고 내각 수장 자리에 올랐다고 밝혔다.

 

 

 

 


한편 2014년 3월 1일(토요일) 현재 동남부 우크라이나의 친 러시아적인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모여 집회를 열며 '러시아'를 연호하고 있다. 도네쯔크(Donetsk), 하르끼브(Kharkiv), 오데싸(Odesa or Odessa), 므이꼴라이브(Mykolaiv), 자뽀리쟈(Zaporizhzha) 등이 그렇다. 오데싸에서는 만 명 정도의 시위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리고 주 깃발을 올렸다. 러시아(RUSSIA)의 수도인 모스크바(Moscow)에서는 이번의 일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러시아 국기를 들고 나오고 있고 노병들은 옛 군복을 입고 나오고 있다.  

 

 

 

 


2014년 3월 1일(토요일) 오후에 하르끼브, 도네쯔크, 루한스크의 주 정부 청사에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내려지고 러시아 국기가 걸렸다. 러시아 연방의 상원의회는 2014년 3월 1일(토요일) 오후에 뿌띤 대통령이 제출한 우크라이나 크르임 반도에 러시아 군대를 동원해 전쟁하겠다는 요청을 만장일치로 승인하였다. 그래서 뿌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공식적으로 침공할 수 있게 되었다.   

 

 

 


 

2014년 3월 1일(토요일), 지난 2014년 2월 21일(금요일)에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이 급히 도망가면서 물 속에 버린 비리에 관련된 듯한 여러 문서들을 말리면서 스캔해서 자료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끄이브(키예프) 마이단 독립광장은 토요일 맞아 거리를 깨끗이 청소하는 자원자들로 넘쳤다. 그리고 끄이브(키예프)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앞에는 이번 크르임 반도를 침공한 러시아에게 항의하는 시위자들이 좀 있었다. 한밤중에는 우크라이나 뚜르츠이놉 대통령 권한대행자와 국무총리를 비롯한 담당자들은 기자회견을 하여, 러시아의 뿌띤 대통령에게 러시아 군사들을 철수할 것을 요청하였다.  

 

 

 

 


2014년 3월 2일(주일, 일요일)은 예배하고 교리 공부하고 교제하며 쉬느라 우크라이나 뉴스를 챙겨보지 못 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에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르임 자치공화국을 침공하여 최소 6000명에서 최대 그보다 두세 배 더 많은 러시아 병력이 크르임을 장악한 것을 다 알고 계신다. 더 이상 이제 내가 이 글에 이어서 이 사태를 중계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제는 우크라이나 방송도 반 정부 시위가 아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 연합(EC), 유엔(UN) 등에서도 이 일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이제 여기서 마감한다. 국제 뉴스를 보시기 바란다. 참고로 하나 기록하자면 동남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국기가 올라간 것은 그 지역 만 명 정도 되는 소수의 활동가들 뿐이었다고 일반 시민들이 나서기 시작하였다. 오늘인지 어제인지, 오데싸에서 촬영한 영상에서 그렇다.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인 뿌띤(PUTIN)을 히틀러(HITLER)에 비유하고 있다.

 

 

 

    


참,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번의 러시아 군대의 우크라이나 크르임 자치공화국 침공은 최근 반 정부 시위의 대상자였고 대통령궁을 비우고 도주했다가 러시아로까지 도망한 야누꼬브이츠가 자신이 아직도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라며 뿌띤 러시아 대통령에게 군 동원을 요청해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주 유엔(UN) 러시아 대사가 밝혔다. 그 증거로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이 쓴 친서를 공개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국회는 바로 응대하였다.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 다른 나라 군대를 들여오는 것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라 국회가 의결할 권한이라고 말이다. 러시아 연방의 국회가 뿌띤 대통령이 요청한 러시아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는 안을 이번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는데, 그런 일을 러시아에서는 국회가 하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대통령이 혼자 요청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러시아는 국회가 결의하는데 우크라이나는 대통령궁도 지키지 않고 자기 목숨 보전을 위해 도망간 대통령이 요청했다고 러시아가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넣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 연방의 유엔 대사는 한참 착각하고 있다. 그것이 국제 사회에서 통한다고 보는가!

 



2014년 3월 5일(수요일),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당사자들인 우크라이나(UKRAINE), 러시아(RUSSIA), 영국(UNITED KINGDOM), 미국(USA) 외무부장관들이 모여서 크르임 문제로 회의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참여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크르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러시아가 국제법을 어기고 있다고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다(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3/06/13661188.html?cloc=olink|article|default). 구체적으로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Budapest Memorandum)를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헝가리(HUNGARY)의 수도인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 1994년 12월 5일에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꾸츠마(L. Kuchma),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 옐친(B. Yelchin), 영국의 수상 메이저(J. Major), 미국의 대통령 클린턴(B. Clinton)이 모여서 구 소련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가 갖고 있던 당시 세계 3위 안에 드는 대량 핵을 포기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에 합의한 그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러시아 연방의 뿌띤 대통령이 이번에 우크라이나의 크르임 자치공화국을 침공하므로 어긴 것이고, 그 뿌띤에게 러시아 연방 국회가 자국의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파견하도록 만장일치로 결의하였으니 러시아 연방의 국회도 마찬가지로 국제법을 어긴 것이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여기서 보시라(http://en.wikisource.org/wiki/Ukraine._Memorandum_on_Security_Assurances). 러시아와 뿌띤 대통령이 얼마나 신의가 없는지를 아시게 되리라.

 



2014년 3월 5일(수요일) 낮에 끄이브(키예프) 인근의 브이쉬네베(Вишневе)에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어떤 한국인들의 모임이 있어서 크르임 지역에서 오신 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크르임 반도는 러시아군이 들어오던 때부터 우크라이나어 방송이 송출되지 않는단다. 그때부터 러시아어 방송만 나오고 있다고 한다. 

 



자, 이제 우크라이나 반 정부 시위 결과를 우크라이나 시각으로 알리려는 나의 이 글은 여기서 접으려 한다. 그 대신 "분석 (2014):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 침공 이야기이다"(http://gohchangwon.tistory.com/736)란 글로 계속한다.

 

 

 

2014년 2월 24일(월), 우크라이나 끄이브에서 고 창원(http://gohchangwon.tistory.com)

2014년 3월 05일(수), 우크라이나 끄이브에서 고 창원(http://gohchangwon.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