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글에 대해서 알린다. 이 글은 우크라이나 반 정부 시위를 우크라아나 시각으로 알린 글(http://gohchangwon.tistory.com/733; http://gohchangwon.tistory.com/entry/결과-2014-우크라이나-시각으로-본-우크라이나-반-정부-시위-결과)에서 이어진 것이다. 우크라이나 반 정부 시위로 친 러시아 정부가 실각하자 갑자기 러시아의 뿌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크르임(크림) 자치공화국을 침공하였기에 이전의 반 정부 시위 결과를 알리는 글과 자연스레 겹치게 되어서 그곳에서 기록하다가 일이 길어지자 이곳에다 옮겨 쓰기 시작했음을 알린다. 그러므로 러시아 연방이 1994년에 맺었던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를 어기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또는 실시간적으로 기록하게 됨을 알린다. 먼저 지난 글을 그대로 가져와서 시작한다.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끄이브(키예프)에서 정치 일정 합의서를 유럽의 외무장관들까지 함께 한 자리에서 합의하고 싸인한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이 도주하고 그 다음 날 우크라이나 국회가 그것을 확인하고 대통령의 실각을 확정하고 새 내각을 구성하던 때인 2014년 2월 26일(수요일)의 크림 자치공화국 사정을 알리는 글부터 시작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 진행을 알리련다.  



 

이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급한 소식을 알린다. 2014년 3월 6일(목요일)에 우크라이나 크르임 자치공화국 의회는 우크라이나에 남지 않고 러시아로 가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우크라이나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우크라이나 국회의장인 올렉싼드르 뚜르츠이놉이 밝혔다. 그리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독일의 메르켈 총리, 유럽의회 의장도 크르임 자치공화국이 결의한 러시아로 서기로 한 것은 국제법을 어긴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어 결의한 2014년 3월 16일(일요일)에 그것을 크르임 국민투표에 올려 처리하기로 한 것도 불법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지금 언론의 거의 모든 매체가 우크라이나 정세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 크르임은 우크라이나 전국으로 송출되는 우크라이나 방송을 끊고서 러시아 방송만 계속 방영하고 있다. 

 



혹시라도 크르임에서 살다 끄이브(키예프)로 피신와 계시는 한국인들은 이 사실, 곧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침공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리스도인들이시라면 사도행전 17: 26-27 말씀을 읽으실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 17장 26절부터 27절까지의 말씀은 이렇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 하도다" (사도행전 17: 26-27; Дії 17: 26-27).

 



나의 이 글은 우크라이나는 무조건 옳고 러시아는 나쁘다는 식이 아니다. 나라가 거짓말로 국민을 호도하고 군인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입력해 군인들이 세계로부터 어떤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게 만드는 것은 용감하고 양식 있는 최고 통수권자의 자세가 아니다.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상당히 많은 주민들이 러시아를 더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이 이미 1991년에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투표를 할 때 정한 것이고(http://www.electoralgeography.com/new/en/countries/u/ukraine/ukraine-independence-referendum-1991.html) 우크라이나 헌법에 속하기로 한 결의를 뒤집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가는 절차법에도 하자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까지 내가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 한 가지 더 밝히면, 최악의 상황으로 우크라이나의 크르임 자치공화국이 국제법과 우크라이나 국내법을 어기면서까지 러시아 연방의 품에 들어간다 하여도 그것은 적법한 절차가 아님을 크림과 러시아는 알아야 한다. 

 

 

 

 


어쨌거나 이러저러하여 크르임이 러시아 연방의 영토로 확정된다면 그것은 러시아를 위해서 결코 좋지 않고, 절반이나 되는 크르임 주민들을 위해서도 역시 그렇다. 그렇게 우크라이나 헌법과 국제법을 어기고 크르임 자치공화국이 러시아 연방으로 간다면 동일한 방식으로 러시아 연방에 있는 많은 자치공화국들 가운데 독립을 원하는 공화국들은 같은 꿈을 꿀 수도 있음을 러시아는 알아야 한다. 러시아 연방에는 크르임 자치공화국 같은 자치공화국이 21개나 있다. 그 공화국들도 이번에 잘 배우고 있을 것이다. 다시 밝히지만 러시아 연방이 국내법과 국제법까지 어기며 크르임을 차지한다면 러시아 연방에 속한 자치공화국들 가운데 독립을 원하는 자치공화국들도 러시아 연방 헌법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결정하여 독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국제적으로 그것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된다면 그 일은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이것을 기억하시라. 만약 이러저러하여 러시아 연방이 더 쪼개진다면 뿌띤의 공이 크다. 하나님의 세상을 다스리시는 섭리는 오늘도 진행 중이다. 하나님은 구속의 일을 하시다가 주무시지 않으신다.

 



그리고 만약 크르임이 러시아로 가게 된다면 우크라이나는 생각할 일이 많다. 먼저 동남부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단속할 것인지, 동남부 우크라이나의 몇 개 주들을 자치공화국으로 세워달라고 요청할 때 어떻게 할 것인지, 동남부 지역에서 언어 문제를 어떻게 정할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사실 크르임 자치공화국은 전기나 물, 가스를 자체 수급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본토인 우크라이나에서 80 퍼센트 정도가 간다. 또 크르임의 무장 세력을 보았으니 크르임으로 가는 관광객도 줄어들 것이다. 크르임 타타르인들이나 회교권 사람들이 폭탄 테러나 그와 비슷한 러시아 반대 운동을 계속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러시아가 크림만 손에 넣고 툭툭 털고서 돌아설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만약 러시아가 실제적으로 크르임을 가져간다면 핵 무기 폐기에 따라 1994년 12월 5일에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우크라이나가 우크라이나 국토와 정치 보전을 목적으로 러시아, 미국, 영국과 맺은 부다페스트 양해각서가 깨지는 것이어서 우크라이나가 다시 핵 무장을 하더라도 반대할 명분이 없어진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반 러시아 정서로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우크라이나 전국으로 확대할 것이다. 사실 지금의 우크라이나를 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반반 있는 '루크라이나' (RUKRAINE)로 규정한다. 이제 역사 앞에 우크라이나(UKRAINE)가 실제로 나타나려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사는 한국인들, 대사관, 한국 정보 기관, 유학생들, 사업가들, 선교사들은 이 일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설령 크르임이 우크라이나에 남게 되더라도 이번의 러시아의 행태를 보며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하였음을 기억하시라. 그리고 참고로 크르임, 크림, 크리미아 등으로 부르는 크림 반도가 러시아의 땅이었던 것처럼 말하며 '러시아로의 귀속'이라고 쓰는 한국 기자들의 글이 많아서 크림이 타타르인들이나 러시아보다 우크라이나의 전신인 끄이브 루스가 먼저 장악했던 지역임을 좀 밝혔다. 자, 지난 번 글부터 시작한다.  

 

 

 

2014년 2월 26일(수요일) 현재, 크르임 자지공화국의 수도인 씸페로뽈(Simferopol)의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 건물 앞에서는 두 진영의 집회가 부딪치고 있다. 크림을 러시아로 돌리고 싶은 시위대와 크림을 우크라이나에 남기려는 시위대로 말이다. 러시아 연방의 국회의원들이 엊그제 크림을 방문하여 크림에 거주 중인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러시아의 여권을 쉽게 발급해 주겠다 했다 한다. 그래서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을 러시아 국민으로 만들고 나중에 자기 국민이 크르임 반도에 산다고 군사력을 동원할 계획을 세우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의 뿌띤(PUTIN) 대통령의 소망과는 달리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크라이나 크르임 자치공화국 의회(Верховна Рада Автономної Республіки Крим; http://www.rada.crimea.ua) 의장인 볼로드이므이르 안드리요브이츠 꼰스딴뜨이놉 (КОНСТАНТИНОВ Володимир Андрійович)은 크르임 자치공화국은 우크라이나를 떠나는 안을 국회에 제출할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http://ua.korrespondent.net/ukraine/politics/3311685-u-krymskomu-parlamenti-ne-stavliat-pytannia-pro-vykhid-krymu-zi-skladu-ukrainy-spiker-konstantynov). 그래서 러시아의 뒷조종을 받거나 아니면 러시아쪽으로 가고 싶은 진영과 우크라이나에 남으려는 진영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충돌한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도 이번의 반 정부 시위가 제 2의 독립운동, 우크라이나 조국수호 전쟁이었음을 우리는 다시 분명하게 확인하게 된다. "슬라바 우크라이니!" (Слава Україні!; 영광이 우크라이나에!), "헤로얌 슬라바!" (Героям Слава!; 영광이 영웅들에게!), "크르임 네 로씨야!" (Крим не Росія!; 크르임은 러시아가 아니다!), "야 흐로마댜느인 우크라이느이!"(Я громадянин України!; 나는 우크라이나 국민이다!)란 소리가 크르임 땅에서도 크게 울려퍼지고 있다. 물론 한쪽에서는 "크르임 라씨야!" (Крым Россия!; 크르임은 러시아이다!)란 소리도 참으로 우렁차다.

 

 

 

 


참고로 기록하자면, 크르임 지역은 이백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사는데 그 중 백만 명 정도가 러시아인종이고 우크라이나인은 오십만 명 정도이다. 그리고 타타르인종이 이십만 명 정도 된다(http://2001.ukrcensus.gov.ua/eng/results/general/nationality/Crimea). 그런데 크르임 타타르인들은 계속 우크라이나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또 참고로 밝히면 크르임(Крим, Крым, Crimea) 지역은 본래부터 러시아 땅이 아니다. 근현대 시기에 러시아가 점령했다가 결국은 우크라이나에 돌려준 우크라이나 영토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나 친 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국민들 가운데 크르임(Crimea)의 역사를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크르임 역사를 좀 적는다. 먼저 크르임 역사는 위키 페디아의 글을 좀 읽으시라(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Crimea). 크르임은 항구 도시인 쎄바스또뽈(Sevastopol)에 남아있는 헤르쏘네스(Chersonesos) 그리스 유적이 증명하듯이 기원 전(BC; Before Christ) 7세기 경부터 타우리스 헤르쏘네스(Taurica Chersonesos or Chersonesus Taurica)란 그리스의 식민지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기원 전 2세기부터 기원 후(AD; Anno Domini) 3세기 경까지 로마 제국(Roman Empire)의 영토가 된다. 그리고 그 후 고트(Goths) 족, 훈(Huns) 족, 불가르(Bulgars) 족, 카자르(Khazars) 족의 침략을 받다가 9세기 말엽부터 13세기 중엽까지 이어졌던 우크라이나의 전신인 끄이브 루스(키예프 루시; Kyivan[Kievan] Rus; http://en.wikipedia.org/wiki/Kievan_Rus')의 스뱌또슬라브 왕자 1 세(Prince Sviatoslav; http://en.wikipedia.org/wiki/Sviatoslav_I_of_Kiev)에게 10세기 중반에 점령당하여 끄이브 루스의 영토가 되고, 주후 988년에 그 크르임의 쎄바스또뽈의 헤르쏘네스에서 끄이브 루스의 볼로드이므이르 대공(Volodymyr Great)이 세례를 받는다. 그러다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 킵차크(Kipchaks), 몽골(Mongols)의 지배를 받던 크르임은 13세기에 제노아 공국(Republic of Genoa)의 지배 아래 든다. 그리고 1441년부터 1783년까지 지금의 크르임 타타르인들의 조상인 크르임 한(Crimean Khanate)의 지배를 받는다. 이어 1783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 제국(Russian Empire)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1922년부터 1991년까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의 지배를 받는다. 그 중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국경 지역인 러시아의 쿠르스크 주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의 탄광 도시인 도네쯔크로 열 네 살 정도에 이사하여 삼십 대 후반까지 지냈기에 우리가 보통 우크라이나인으로 알고 있는 러시아의 흐루시쵸프(Nikita KHRUSHCHEV, 1894-1971)가 서기장으로 재직하며 권력을 행사하던 1954년 2월 19일에 소련 최고의회는 크르임 반도를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공식적으로 넘긴다. 그래서 1991년에 소련에서 열 다섯 나라가 독립할 때 크르임은 우크라이나로 서게 된다. 그러므로 역사 연표를 따지자면 우크라이나의 전신인 끄이브 루스가 러시아의 전신인 러시아 제국보다 먼저 크르임을 접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크르임 타타르인들보다도 더 먼저 크르임(크림)을 접수하고 다스린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크르임(크림; Crimea)은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 영토이다.

 

그러나 끄이브 루스(키예프 루시)를 우크라이나만 아닌 벨라루스, 러시아의 역사로 넓혀서 보면 이야기가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얼마나 다른가를 알 수 있는 비교도를 한 장 올린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는 끄이브 루스를 이어받고 있지만, 러시아는 칭기스 한(Genghis Khan)의 후예들이었다가 내분으로 몽골(Mongol Empire; http://en.wikipedia.org/wiki/Mongol_Empire) 제국에서 나와 본국과의 교류를 끊고 동유럽 일대에서 '황금의 약탈자'들로 군림했던 킵차크 한(Golden Horde, Золота Орда, Золотая Орда)의 문장을 이어 온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우크라이나 역사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덧붙인다. 최근, 곧 2014년 2월 7일(금)부터 23일(일)까지 러시아의 남부 흑해 연안의 도시인 소치(Sochi)에서 열렸던 겨울 올림픽(2014 XXII Winter Olympics; http://www.sochi2014.com)을 기억하시리라. 그 러시아의 소치가 있는 쿠반 지역(Kuban; http://en.wikipedia.org/wiki/Kuban)이 1900년대 초반까지 우크라이나의 영토였다(아래 지도 참고; http://konovchenko.blox.ua/2013/02/Proiski-avstrijskogo-genshtabu-Oglyadova-karta.html). 오늘날 중국(CHINA)의 동북쪽이 예전의 고구려나 발해의 영토였듯이 말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토를 어쩌다가 받아서 다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터놓고 말해서, 크르임(크림) 반도나 동남부 우크라이나는 본래 러시아의 영토였고 러시아인들이 많이 사니까 러시아로 넘기면 되겠다고 편하게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좀 계시나 본데,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다. 도대체 국내에 계시는 우크라이나 전문가들은 다들 어디에 숨어 계시는가?

 

 

 

 


어쨌거나 2014년 2월 26일(수요일) 현재 동남부 우크라이나는 조용하다. 그들도 야누꼬브이츠의 두세 가지 면을 보았기 때문일까? 비겁함, 부족한 자질, 그리고 부정축재를 말이다. 하르끼브는 시장이 시청사에 들어갈 수 없도록 시위대가 막고 있고, 뽈따바나 쥐또므이르에서는 이미 선거를 통해 친 야누꼬브이츠적인 시장을 바꿨다. 그리고 자뽀리쟈인가 드니프로뻬트로브스크인가는 친 야누꼬브이츠적이었던 시장이 사임하였다. 지역당은 야당이 되었고, 야누꼬브이츠를 끌어내린 새 정부가 힘을 행사한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국 주요 도시들의 중앙 광장에 보통 서 있는 레닌 동상이 우크라이나 전국에서 계속 거꾸러뜨려지고 있는데 특히 중부 우크라이나에 집중되어 있다(http://andriy-lopata.livejournal.com/24720.html).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대체로 러시아어가 아닌 우크라이나어를 쓰며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 살면서도 온화한 마음에 레닌 동상을 부수지 않았던 중부 우크라이나인들이 이미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이 실각하고 도주했는데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구 소련의 상징이자 현재 러시아의 향수인 레닌 동상을 무참히 끌어내리고 짓밟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의 반 정부 시위가 단순한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 반대가 아닌 친 러시아적인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 반대였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동부나 서부에 레닌 동상 파괴가 적은 것은 서부는 이미 옛날에 다 없앴기 때문이고, 동부는 아직까지는 레닌 동상에까지는 손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부나 심지어 크르임 반도에서까지 레닌 동상 파괴가 시작되었음을 보게 된다. 이 일로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쥐또므이르에서 레닌 동상을 거꾸러뜨리는 영상을 한 예로 먼저 소개한다(http://youtu.be/Wb-cIt4o2QQ). 또 우크라이나 5번 텔레비전에서 한 꼭지의 뉴스로 만든 것으로 다른 여러 도시에서 레닌의 동상이 거꾸러지는 것도 더불어 소개한다(http://youtu.be/U0ZRvXcPFNQ).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국 도시의 거리 이름에 '레닌'이 들어간 거리들도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 있음도 이번 기회에 알린다(http://ukrstream.tv/timeline/entry/387#.Uw9xddLy_IU).

 

 

 

 


2014년 2월 26일(수요일) 같은 날 저녁에 새 내각 장관 후보자들과 함께 올렉싼드르 뚜르츠이놉 국회의장 겸 대통령 직무대행자는 끄이브(키예프) 우크라이나 마이단 독립광장의 시민들 앞에 섰다. 새 내각의 수장이 될 국무총리 후보는 아르쎄니이 뻬트로브이츠 야쩨뉵(ЯЦЕНЮК Арсеній Петрович; Arseniy YATSENYUK)이다.

 

 

 

 


2014년 2월 27일(목요일) 새벽 5시쯤에 우크라이나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수도인 씸페로뽈(Simferopol)의 정부 청사와 의회 의사당을 무기로 무장한 120명 정도의 정체 모를 사람들이 점령하였다. 그리고 의사당의 꼭대기에 있는 깃발 게양대에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깃발과 함께 그동안 있었던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리고 러시아 연방의 국기로 바꿔달았다. 일반 시민들이 총으로 무장하고 정부 기관을 점령하고 그 일을 하였다? 시민들은 어디서 총기를 수납하였을까? 만약 시민이 아니라면 그들은 누구일까? 이 일은 더 지켜보면 러시아와의 연계성이 나올 것이라 나는 짐작한다.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이 러시아의 품에서 자신은 아직 임기가 남은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라고 외치고,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은 지속적으로 시위를 하며 정부 청사를 총기로 중무장하여 계속 지키게 하는 길을 러시아의 뿌띤 대통령이 택하려 하는지 지켜보자.

 

 

 

 


그동안 도주를 해 오던 전 우크라이나 제 5대 대통령이었던 빅또르 야누꼬브이츠는 하르끼브에서 도네쯔크로 그리고 크르임 자치공화국으로 피신하였는데 아마도 지금 러시아로 가지 않았나 싶다. 오늘 어떤 성명서가 크르임의 씸페로뽈에서 낭독되었는데, 야누꼬브이츠가 직접 얼굴을 내놓고 읽은 것이 아니어서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지만 야누꼬브이츠가 러시아의 보호 아래 들어갔기에 그런 성명서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상한 것은 이번의 크르임 정부 청사와 의회 의사당을 점령한 이들은 무장을 하였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시민들이 총을 소지할 수 없다. 이번의 시민들의 반 정부 시위에서도 보았듯이 시민들은 몽둥이나 돌로 싸운다. 그런데 시위자들이 총을 가졌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하겠는가? 2014년 2월 27일(목요일) 아침에 업무를 시작하며 새벽의 크르임 씸페로뽈의 일을 들은 우크라이나 국회는 이 일을 대처하느라 힘을 썼으며 뚜르츠이놉 의장 겸 대통령 대행자는 만약 쎄바스또폴에 있는 러시아 흑해 함대의 군인들이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 우크라이나 영토에 들어오면 아주 중대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 엄중히 경고하였다.

 

그리고 내각을 구성하기 위하여 우크라이나 국회는 2014년 2월 27일(목요일) 오후 1시 50분부터 새 국무총리 후보인 아르쎄니이 야쩨뉵에게 후보자 연설을 들었으며 그리고 질의 응답을 마친 후 국무총리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나서 국무총리가 된 아르쎄니이 야쩨뉵은 내각 각 부 장관들을 소개하면서 지지를 호소하였다. 그래서 오후 3시가 좀 넘은 시각에 우크라이나 국회는 새 내각의 각 부 장관을 모두 인준하였다. 우크라이나 국무총리 웹페이지에서 그 사실을 확인하실 수 있다(http://www.kmu.gov.ua/control/en/publish/article?art_id=247059301&cat_id=244314975). 하나님께서 새 내각 국무총리와 각료들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시기를 빈다. 러시아 연방의 통치자인 뿌띤 대통령과 러시아 군사들의 비정상적인 손길이 우크라이나에 미치지 않기를 또한 힘써 바란다.   

 

 

  

   

 


우크라이나 국회에서 새 내각을 인준하여 새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설립되자 볼로드이므이르 꼰스딴뜨이놉(Володимир КОНСТАНТІНОВ)이 의장으로 있는 크르임 자치공화국 의회는 무장한 사람들이 통제한 가운데 아나똘리이 모흐일룝(Анатолій МОГИЛЬОВ)을 실각시키고 새 내각 수장을 뽑았으며 대통령선거가 있는 2014년 5월 25일(일요일)에 크르임 자치공화국이 더 주도권을 갖고 자신들의 일을 결정할 수 있도록 국민투표를 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크라이나 헌법에 합치하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새 내각 수장은 쎄르히이 악쎄놉(Сергій АКСЕНОВ)이다. 

 

 

 

 


크르임 타타르인들은 러시아로 가는 일은 죽어도 없을 것이라 하고 또 러시아인들 가운데서도 우크라이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참 복잡한 정서를 지닌 땅이 크르임 반도이다(http://youtu.be/sFpAnMtAsPo).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크르임 주민들은 사도행전 17장 26절부터 27절 말씀을 읽으시면 좋겠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 하도다" (사도행전 17: 26-27; Дії 17: 26-27). 하나님께서 왜 소련을 흩으시고 열다섯 나라에 자유를 선물하셨을까? 오늘날 러시아의 뿌띤(PUTIN) 정부나 러시아 정교회의 일을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지 않을까?

 

 

 

 


2014년 2월 28일(금요일) 현재 러시아계 무장 청년들이거나 러시아 군인들이 총으로 무장하고 우크라이나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수도인 씸페로뽈의 공항과 러시아 흑해 함대가 임대해 쓰는 우크라이나 쎄바스또뽈 특별시 공항을 통제하고 있나 보다. 만약 러시아 군이 크르임 반도를 장악했다면 이 일은 복잡해진다. 우크라이나는 이 일을 어떻게 응대할지 살피며 텔레비전 뉴스를 계속 주시한다. 일단 영국 비비씨(BBC) 텔레비전의 인터넷 서면 뉴스로 연결한다(http://www.bbc.com/news/world-europe-26379722). 그리고 비비씨에서 만든 유튜브 영상도 좀 알린다(http://youtu.be/f6PHkbjj4qk).


 




2014년 2월 28일(금요일) 러시아 시각으로 오후 6시에 러시아의 남부 도시이자 우크라이나에 가까운 '로스토프 나 도누' (Rostov-na-Donu)에서 우크라이나의 네번째 대통령이자 제 5대 대통령이었던 빅또르 야누꼬브이츠(Viktor YANUKOVYCH)가 자신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라고 나타나 기자 회견을 하였다. 아직도 자신이 합법적인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라는 그의 말을 들었다. 러시아 24 채널 텔레비전이 생중계하였다. 자, 이제 베일에 감춰졌던 야누꼬브이츠가 러시아에 있음이 드러났다. 자기 나라에서 도망쳐 다른 나라에 앉아서 자기 나라의 언어인 우크라이나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자신이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는 야누꼬브이츠를 보았다(http://youtu.be/S-jlNe4k02Y).  

 

 

 

 


스위스(SWISS)나 오스트리아(AUSTRIA)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은행은 야누꼬브이츠와 그의 아들의 계좌를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아이엠에프(IMF)의 구제 금융을 받아 자신과 자기 아들에게로 가져갔을 것이 확실시 되는 야누꼬브이츠가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가까이 있음을 느낄 시간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뿌띤 대통령이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범인인 야누꼬브이츠를 어떻게 하려는지 두고 볼 일이다. 크르임에 있는 러시아계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러시아로 설 것을 촉구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대통령직 수호를 위해 러시아가 나서줄 것만 바라는 야누꼬브이츠를 우크라이나나 유럽의 조소나 압박 속에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를 러시아 연방의 뿌띤 대통령은 재고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검찰 총장은 만약 야누꼬브이츠가 러시아에 있는 것이 확인되면 민간인 대량 학살 혐의를 쓴 범인 신분인 그를 보내주라고 러시아 정부에 요청하겠다고 이미 널리 밝힌 바 있다. 

 



자, 이제 우크라이나 크르임(Крим, Крым, Crimea) 문제를 러시아가 어떻게 풀어갈지 보자. 우크라이나는 미국(USA)에 영토 보전에 대한 말을 하기 시작하여 1994년에 우크라이나(UKRAINE)가 러시아(RUSSIA), 미국(USA)과 맺은 다자간 비핵화 협정을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핵을 폐기하는 대신 서방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기로 하였는데, 만약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를 말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우크라이나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확인하였다. 국가 부도 사태 해결을 위해 바쁜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제 이 일에도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세계에서 순수한 자국 기술로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은데 그 몇 개 나라 중의 하나가 우크라이나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비핵화 프로그램은 그동안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러시아의 뿌띤 대통령이 참 어려운 시험 문제를 던졌다. 

 

2014년 3월 1일(토요일)에 우크라이나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내각 수장인 쎄르히이 악쑈놉(Сергій АКСЬОНОВ)은 러시아의 뿌띤(PUTIN)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리고 크르임 자치공화국 전체는 2014년 2월 27일(목요일) 새벽부터 친 러시아 계열의 무장 청년 또는 러시아 군인들이 통제하고 있다. 씸페로뽈 시내는 무장 러시아 군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순찰을 돌고 크르임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엄격한 통제와 검문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지금(2014년 3월 1일, 토요일 오후) 우크라이나 112 텔레비전(http://112.ua)의 실시간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 있는데(https://www.youtube.com/watch?v=m_PRECuV3-4) 씸페로뽈에서 친 러시아계 청년들이 벽에 넓게 붙여놓은 러시아 국기를 배경으로 앉아서 기자 회견을 하며 씸페로뽈은 지극히 안정적이며 시민들이 개를 데리고 산책할 정도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시민들은 러시아 국기나 러시아 국기 색깔의 하얀색, 파랑색, 빨강색 풍선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그러나 크르임 반도에 계시던 한국인들은 거의 끄이브(키예프)로 올라오셨나 보다. 반면 올렉싼드르 뚜르이츠놉 대통령 권한 대행은 쎄르히이 악쑈놉이 법을 어기고 내각 수장이 됐다고 밝혔다.

 

 

 

 


한편 2014년 3월 1일(토요일) 현재 동남부 우크라이나의 친 러시아적인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모여 집회를 열며 '러시아'를 연호하고 있다. 도네쯔크(Donetsk), 하르끼브(Kharkiv), 오데싸(Odesa or Odessa), 므이꼴라이브(Mykolaiv), 자뽀리쟈(Zaporizhzha) 등이 그렇다. 오데싸에서는 만 명 정도의 시위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리고 주 깃발을 올렸다. 러시아(RUSSIA)의 수도인 모스크바(Moscow)에서는 이번의 일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러시아 국기를 들고 나오고 있고 노병들은 옛 군복을 입고 나오고 있다.  

 

 

 

 


2014년 3월 1일(토요일) 오후에 하르끼브, 도네쯔크, 루한스크의 주 정부 청사에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내려지고 러시아 국기가 걸렸다. 러시아 연방의 상원의회는 2014년 3월 1일(토요일) 오후에 뿌띤 대통령이 제출한 우크라이나 크르임 반도에 러시아 군대를 동원해 전쟁하겠다는 요청을 만장일치로 승인하였다. 그래서 뿌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공식적으로 침공할 수 있게 되었다.   

 

 

 

 


2014년 3월 1일(토요일), 지난 2014년 2월 21일(금요일)에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이 급히 도망가면서 물 속에 버린 비리에 관련된 듯한 여러 문서들을 말리면서 스캔해서 자료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끄이브(키예프) 마이단 독립광장은 토요일을 맞아 거리를 깨끗이 청소하는 자원자들로 넘쳤다. 그리고 끄이브(키예프)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앞에는 이번 크르임 반도를 침공한 러시아에게 항의하는 시위자들이 있었다. 한밤중에는 우크라이나 뚜르츠이놉 대통령 권한대행자와 국무총리를 비롯한 담당자들은 기자회견을 하여, 러시아의 뿌띤 대통령에게 러시아 군사들을 철수할 것을 요청하였다.  

 

 

 

 


2014년 3월 2일(주일, 일요일)은 예배하고 교리 공부하고 교제하며 쉬느라 우크라이나 뉴스를 챙겨보지 못 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에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르임 자치공화국을 침공하여 최소 6000명에서 최대 그보다 두세 배 더 많은 러시아 병력이 크르임을 장악한 것을 다 알고 계신다. 이제는 우크라이나 방송도 반 정부 시위가 아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 연합(EC), 유엔(UN) 등에서도 이 일을 다루고 있다. 참고로, 동남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국기가 올라간 것은 그 지역 만 명 정도 되는 소수의 활동가들 뿐이었다고 일반 시민들이 어제오늘부터 나서기 시작하였다. 또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인 뿌띤(PUTIN)을 히틀러(HITLER)에 빗대기 시작했다.

 

 

 

    


참,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번의 러시아 군대의 우크라이나 크르임 자치공화국 침공은 최근 반 정부 시위의 대상자였고 대통령궁을 비우고 도주했다가 러시아로까지 도망한 야누꼬브이츠가 자신이 아직도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라며 뿌띤 러시아 대통령에게 군 동원을 요청해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주 유엔(UN) 러시아 대사가 밝혔다. 그 증거로 빅또르 야누꼬브이츠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쓴 친서를 공개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국회는 바로 응대하였다.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 다른 나라 군대를 들여오는 것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라 국회가 의결할 권한이라고 말이다. 러시아 연방의 국회가 뿌띤 대통령이 요청한 러시아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는 안을 이번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는데, 그런 일을 러시아에서는 국회가 하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대통령이 혼자 요청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러시아는 국회가 결의하는데 우크라이나는 대통령궁도 지키지 않고 자기 목숨 보전을 위해 도망간 그 대통령이 요청했다고 러시아가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넣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 연방의 유엔 대사는 착각하고 있다. 그것이 국제 사회에서 통하리라 보는가!

 



2014년 3월 4일(화요일)에 러시아 연방의 뿌띤(PUTIN) 대통령이 이번의 우크라이나 크르임 침공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였다. 야누꼬브이츠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 영상을 좀 연결한다(http://youtu.be/ZwspcvY5kvg).

 

 

 

 


2014년 3월 5일(수요일),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당사자들인 우크라이나(UKRAINE), 러시아(RUSSIA), 영국(UNITED KINGDOM), 미국(USA) 외무부장관들이 모여서 크르임 문제로 회의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참여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크르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러시아가 국제법을 어기고 있다고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다(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3/06/13661188.html?cloc=olink|article|default). 구체적으로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Budapest Memorandum)를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헝가리(HUNGARY)의 수도인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 1994년 12월 5일에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꾸츠마(L. KUCHMA),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 옐찐(B. YELTSIN), 영국의 수상 메이저(J. MAJOR), 미국의 대통령 클린턴(B. CLINTON)이 모여 구 소련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가 갖고 있던 당시 세계 3위 안에 드는 대량 핵을 포기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에 합의한 그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러시아 연방의 뿌띤 대통령이 이번에 우크라이나의 크르임 자치공화국을 침공하므로 어긴 것이고, 그 뿌띤에게 러시아 연방 국회가 자국의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파견하도록 만장일치로 결의하였으니 러시아 연방의 국회도 마찬가지로 국제법을 어긴 것이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여기서 보시라(http://en.wikisource.org/wiki/Ukraine._Memorandum_on_Security_Assurances). 러시아의 뿌띤 대통령이 얼마나 신의가 없는지 아시게 되리라.

 



2014년 3월 5일(수요일) 낮에 끄이브(키예프) 인근의 브이쉬네베(Вишневе)에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어떤 한국인들의 모임이 있어서 크르임 지역에서 오신 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크르임 반도는 러시아군이 들어오던 때부터 우크라이나어 방송이 송출되지 않는단다. 그때부터 러시아어 방송만 보도되고 있다 한다. 

 

 

 

 


2014년 3월 6일(목요일) 낮에 볼로드이므이르 안드리요브이츠 꼰스딴뜨이놉 (Володимир КОНСТАНТИНОВ)이 의장으로 있는 크르임 자치공화국 의회는 러시아 연방으로 가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2014년 3월 16일(일요일)에 그 안건을 크르임 자치공화국 국민투표에 올려 처리하기로 하였단다. 루스땀 떼미르할리예브(Рустам Теміргалієв) 크르임 내각 제 1 부총리가 나와서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우크라이나 헌법에 위반하고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도 위반한다. 그 일을 러시아가 앞뒤에서 밀고끌고 있는데, 그것은 국제법을 어기는 것이다.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당장 우크라이나 국회의장인 올렉싼드르 뚜르츠이놉 의장 겸 대통령 권한 대행자는 우크라이나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중앙 선거관리위원회는 그 국민투표를 원천봉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독일의 메르켈 수상, 유럽연합 의회 의장 등은 그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크르임 지역에 있는 크르임 타타르 사회의 수장인 레파트 추바롭(Рефат Чубаров; голова Меджлісу кримськотатарського народу)은 서부 우크라이나인들과 유엔(UN)에 자신들을 지켜줄 것을 요청하였고 타타르인들은 거리에서 피켓 시위를 하였다.

 

 

 

 


2014년 3월 6일(목요일)에 아르쎄니이 야쩨뉵 국무총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의회를 방문하여 그 수장들과 유럽 정치 지도자들을 만나 외교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침공을 풀기 위해 대화하였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애썼다. 율리야 뜨이모셴꼬와 비딸리이 클르이츠꼬는 아일랜드(REPUBIC OF IRELAND)의 더블린(Dublin)에 가서 우크라이나 일을 알렸다. 

 

 

 

 


2014년 3월 7일(금요일)에 인터폴(INTERPOL)은 러시아 연방 안에서 빅또르 야누꼬브이츠(Viktor YANUKOVYCH)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을 수배 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아직 살아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유럽 나라들은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인 야누꼬브이츠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경제를 파탄내고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받은 구제금융을 자신들을 위해서 쓴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과 그의 아들, 아자로브 전 국무총리, 자하르첸꼬 전 내무부장관 등을 비롯한 전 우크라이나 정치인과 사업가 18명의 금융 자산을 동결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방송은 그날 러시아 방송의 거짓말에 대한 영상을 일일이 보여주며 정신과 의사들을 찾아가 그 심리를 알아보기도 하였다. 생각보다 러시아의 거짓말이 심해서 뿌띤 대통령은 크르임에 러시아 군인이 없다고 하면서 크르임에 지금 있는 무장 청년들은 크르임 자체경비단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크르임에 있는 무장 군인에게 물었더니 자신들은 러시아인이라고 하였고, 왜 다른 나라의 영토 안에 있느냐고 묻자 텔레비전을 보지 않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http://youtu.be/wMJwdX5IHm8). 

 

 

 

 


2013년 11월 22일부터 시작된 반 야누꼬브이츠 시위의 선봉에 섰고 시종일관 강경 대응을 해 오다 2014년 2월 21일(금요일)의 야누꼬브이츠와 야당 세 의원들의 정치 일정 합의에 동의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며 일을 어렵게 만든 우익 진영(Правий Сектор; Right Sector)의 수장인 드므이뜨로 야로쉬(Дмитро ЯРОШ, Dmytro YAROSH)가 2014년 3월 8일(토요일)에 텔레비전 기자 회견을 통해 다가오는 2014년 5월 25일의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사실 이번의 평화적인 반 정부 시위가 과격해진 것은 그들의 책임이 결코 적지 않을 텐데, 대통령 선거에까지 나온다면 러시아가 아주 좋은 타겟을 잡았다며 박수치겠다.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가 나눠지던 때의 모습이 그려진다(http://en.wikipedia.org/wiki/Dissolution_of_Czechoslovakia).

 

 

 

 


2014년 3월 11일(화요일)이다. 주일 예배를 지나고 그 다음 날도 뉴스를 지켜보았지만 이제는 이 일을 세상이 다 알 정도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시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도 정리를 한다. 일단 크르임 자치공화국의 새 내각 수장이 자체 군을 만들기로 했고, 우크라이나 화폐가 아닌 러시아 화폐를 도입하기로 했으며 며칠 뒤인 2014년 3월 16일에 러시아로 갈 것인지, 우크라이나에 남아서 자치권을 더 확대할 것인지를 묻는 국민투표를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정부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불법임을 밝혔지만 물리적으로 대응하지는 않기로 했다. 크르임의 쎄바스또뽈 특별시는 공식 문서를 우크라이나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바꿨고, 러시아 군인(친 러시아계 무장 청년들일 수도 있겠지만)들이 우크라이나 군 시설을 습격하였고, 우크라이나 미사일 기지도 습격하였다. 물론 다른 공공 기관도 거의 점령하였다. 아마 2만 명 정도 되는 러시아 군이 지금 크르임에 깔려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도 러시아로부터 계속 전차나 군병들이 크르임으로 몰려오고 있다. 실각하고 도주했던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을 다시 대통령에 앉히는 것이 뿌띤의 계획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2014년 3월 11일(화요일)에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자신이 대통령이라고 군인들에게 다른 명령을 따르지 말라고 말을 했단다(http://youtu.be/W0S02ItnjvM). 그는 수치를 모르나 보다!

 

일이 이 상태로 몇 달 동안 계속 되거나 크르임이 러시아로 넘어갈 수도 있음을 이제는 조심스럽게 내다봐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동안 크르임(크림) 반도에서 살았던 우리 한국인들이나 선교사들은 결단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는 듯하다. 크르임이 러시아로 선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이다. 크르임이 러시아로 선다면 복음 전파 문제, 비자 수납 문제 등을 러시아 선교사들에게 물어서 그 대처 방안을 찾아야 할 듯하다. 우크라이나 본토와 크르임 반도 양쪽에 사역지가 있는 선교사들은 고민이 더 심할 듯하다.  

 



참, 크르임 자치공화국 안에 있는 타타르인들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는데, 그들은 애초부터 러시아의 크르임 침공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 크르임 국회가 러시아로 가려고 하자 크르임 국회 앞에서 시위를 했었다. 그러다 일이 커지자 집에서 조용히 지냈는데 크르임 국회가 러시아로 가기로 정하자 그들이 다시 거리에서 피켓 시위를 하며 여론을 알렸다. 그래도 크르임이 러시아로 가는 것을 막기는 어렵지 않겠나 싶다. 크르임 자치 정부는 타타르인들에게 타타르어를 크르임에서 그대로 공용어로 쓰게 할 것과 내각에 타타르인들도 중용할 것임을 밝히며 회유하고 있다. 따라서 크르임 타타르인들이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의 지분을 품고 러시아로 갈지 아니면 우크라이나에 남으려고 싸울지는 모르겠다. 그들도 정세나 외교를 모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나중에 또 이어서 쓰련다.

 



아, 그리고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2014년 3월 11일(화요일) 오후 2시에 크르임 자치공화국 국회가 크르임의 독립을 선언한 일이다(http://youtu.be/fzcT9mWexBs). 또 동시에 2014년 3월 16일(일요일)에 행해지는 크르임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를 위한 재정 지출안을 통과시켰다. 크림은 독립의 길을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

 

 

 

 


2014년 3월 12일(수요일)에 덧붙인다. 혹시라도 이번의 우크라이나 반 정부 시위나 크르임 사태를 해결해 가는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을 알려면 영국 비비씨의 한 글이 도움이 되실 것이다(http://www.bbc.com/news/world-europe-25910834). 많은 이들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에 관심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시각으로 2014년 3월 12일(수요일) 밤 11시 반이다. 우크라이나의 새 국무총리인 아르쎄니이 야쩨뉵(A. YATSENYUK)이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B. OBAMA) 대통령을 만났다(http://www.bbc.com/news/world-europe-26552482).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함께 할 것이라는 그 영상은 비비씨에서 좀 보았지만, 유튜브에는 안 나오니 야쩨뉵의 미국 방문을 알리는 영상으로 연결한다(http://youtu.be/dXmqkHRXjjk).

 

 

 

 


2014년 3월 13일(목요일)에 덧붙인다. 어제, 곧 2014년 3월 12일(수요일)에 미국(USA)의 워싱턴 디씨(Washington DC)에서 우크라이나의 야쩨뉵 국무총리가 미국의 대통령인 오바마와 만났다(http://youtu.be/-E9EqUnr4rg). 야쩨뉵 총리는 우크라이나는 이번 사태를 외교적으로 풀고 있음을 밝히며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지지해 주고 있는 것을 감사했고,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국가로 서도 러시아와 협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함께 할 것임을 확언하였다.

 

 

 

 


야쩨뉵 우크라이나 총리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만남을 보도하고 해설한 미국의 한 텔레비전 영상도 여기에 연결한다(http://youtu.be/4Fec72iAfDY). 그리고 씨씨 텔레비전의 미국 방송에서 만든 영상도 연결한다(http://youtu.be/QDIyEe8Gdgo). 야쩨뉵 국무총리가 뿌띤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 사태를 멈추라고 한 메세지도 있다. 

 

 

 

 


2014년 3월 13일(목요일), 현재 우크라이나의 정세는 이렇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지역에서 군사훈련을 계속 중이고, 이에 대응해 우크라이나는 서부 르비브 주의 국경 경비를 담당하던 군인들을 동부 전선으로 배치했다. 크르임과 맞닿아 있는 헤르쏜 주에도 우크라이나 군이 배치되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은 러시아 군을 막아야 할 우크라이나 군인은 러시아의 수 십 만 군인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방어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우크라이나 부근으로 군사력을 모으고 있고 경비 중이다. 그러나 만약 이번에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우크라이나의 핵 재 무장 이야기가 우크라이나 안팎에서 넘쳐날 것이다. 이미 비딸리 클르이츠꼬가 수장으로 있는 우크라이나 민주 개혁 동맹 당(УДАР)의 한 의원은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되지 않을 때는 우크라이나는 영토 보전을 위해 핵 재무장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어쨌거나 2014년 3월 16일에 예정된 크르임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가 마쳐진다면 그것은 이미 겉잡을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독립의 마지막 관문이니 말이다. 러시아의 논리도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출 수 있게 되겠지. 순서는 바꿔졌지만 결국은 크르임이 독립을 선언하고 러시아로 서게 된다면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위반이라고 해석하기에도 좀 난감해진다. 외세에 의한 일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자국 안에서 분리 운동이 일어난 것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서방 국가들은 국민투표가 이루어지기 전에 외교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고 크르임 국회에서도 그 지지가 거의 없던 '악쑈뇹'이란 한 사나이가 갑자기 일어나서 자기 정치 인생의 사활을 걸고 뿌띤에게 충성을 다 하고 있으니 이번 일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2014년 3월 14일(금요일)에 덧붙인다. 어제, 곧 2014년 3월 13일(목요일)에 미국의 뉴욕에 있는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의 안전보장이사회(Security Council)에 야쩨뉵 우크라이나 국무총리가 참석해 우크라이나의 이웃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5) 가운데 한 나라가 우크라이나의 크르임을 침공하였음을 밝히고, 러시아를 향해 철군하라고 말했다. 아르쎄니이 야쩨뉵 국무총리는 통역 없이 영어로 이번의 미국 방문과 유엔 방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http://youtu.be/ymt0v_Qic6o). 그의 방문을 전하는 유튜브 영상도 알린다(https://www.youtube.com/watch?v=u2x2IxeLmBk).   

 

 

 

 


2014년 3월 14일(금요일)에, 영국 런던에서 미국의 존 케리 국무부장관과 러시아의 쎄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장관이 만나서 6시간 동안 의견을 나눴지만 결국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였단다. 외교로 이 사태를 잘 풀 수 있을까?

 



자, 급한 우크라이나 국내 소식 몇 개를 전한다. 2014년 3월 14일(금요일) 밤 소식이다. 실각했던 야누꼬브이츠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석탄 산지로 유명한 동부 우크라이나의 도네쯔크 주의 주도인 도네쯔크(Donetsk)에서 엊그제 사망 사고가 있었다. 친러시아 성향의 시위대들이 우크라이나 민족성을 중시하는 자유당의 한 당직자를 사망케 하였다. 마침내 동부의 친 러시아 성향의 시위대가 친 우크라이나 시위대들을 심하게 구타하고 죽이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뒤에 러시아 군인들이 탱크, 장갑차, 비행기, 헬리콥터들을 갖고 서 있기 때문이겠지! 오늘 나온 떼에스엔 뉴스 영상에 따르면 2014년 3월 14일(금요일) 현재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동부 우크라이나의 4개 주에 이미 8만명 이상의 러시아 군이 중무장하여 들어와 있다(http://youtu.be/1Rnd04NeME8). 그들은 전투기, 헬리콥터, 탱크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들이 들어와 있는 지역은 자뽀리쟈 주, 도네쯔크 주, 하르끼브 주, 쑤므이 주이다. 러시아가 크르임 반도 침공으로 끝내지 않고 우크라이나 본토에까지 거리낌 없이 들어와 있다. 뿌띤이 자기 속내를 모두 드러내고 있다.

 

 

 

 


2014년 3월 15일(토요일)에 덧붙인다. 하르끼브에서 친우크라이나 시위대와 친러시아 시위대가 격렬히 서로 싸우다 2명이 사망하였다. 크르임에서는 친러시아 자위대가 친 우크라이나 성향의 할머니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하였다. 내일 있을 크르임의 독립 또는 러시아로의 합병을 묻는 국민투표는 그들의 뜻대로 될 것이다. 그 문항에는 우크라이나에 남을 것인지는 아예 없다고 한다. 동부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성향의 시위대들 뒤에 러시아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에서는 2014년 3월 15일, 토요일 오후에 5만 명 정도가 러시아 국기와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행진하며 뿌띤이 없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바라며 우크라이나에 미안하다고 말하였다(http://fakty.ictv.ua/ua/index/view-media/id/57198/start/30, http://youtu.be/XYdVN4gPh_Y).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회는 2014년 3월 15일(토요일) 13시 20분에 우크라이나 크르임 자치공화국 의회를 해산하였다(http://youtu.be/436MX10a7As).

 

 

 


 

2014년 3월 17일(월요일)에 덧붙인다. 어제는 일요일, 주일이었다. 교회를 섬기는 나는 그래서 특별히 덧붙이는 글을 올리지 못 했다. 그렇지만 어제, 곧 2014년 3월 16일(일요일)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우크라이나 크르임 자치공화국에서는 크르임의 러시아 합병에 대한 국민투표가 진행되었다.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올 것으로 예측되어 96퍼센트 정도가 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반대 표시는 할 수 없는 선거였다. 그리고 이 결과는 그렇게 나올 것으로 다 짐작했다. 그러므로 국제적으로 그 선거가 유효하냐 아니냐를 따져보아야 이제 별다른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뿌띤의 입지를 넓혀준 것밖에 아니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러시아의 뿌띤이 선거 전 날인 2014년 3월 15일(토요일) 오후에 크르임 반도로 가는 가스를 통제하는 우크라이나 본토 헤르쏜 주의 스트릴꼬베(Стрілкове, Strilkove)를 공격했다는 것이고(http://youtu.be/6n_M5eKvh0I), 또 러시아와 가장 가까운 크르임 반도의 동쪽인 케르츠(Kerch) 역에서 기차에 대규모로 탱크나 전차를 포함한 무기들을 올려서 어디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http://youtu.be/bvsyzwCeLM0).

 

 

 

 


2014년 3월 17일(월요일), 우크라이나 국회에서는 군 동원법을 계속 통과시키고 있고, 동부 우크라이나 국경을 봉쇄하라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역시 에상대로 동남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계 주민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는 크르임처럼 러시아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는 시위자들의 소리가 생긴다. 그러나 오늘 국회에서 올레흐 랴쉬꼬(Oleh LYASHKO) 의원이 말한 대로 이번에 동부에서 소요를 일으키는 친러시아주의자들은 5천 명 정도라 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여권을 들고 러시아로 가면 되고, 우크라이나 영토는 460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남기라는 말이 지금의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서이다. 어제, 곧 2014년 3월 16일(일요일) 오후에 우리 집 주인이 다녀갔는데, 그녀의 이야기도 랴쉬꼬 의원의 말과 같았다. 러시아는 계속 친 러시아주의자들을 선동하여 피를 보고 있다. 그러다가 친 러시아주의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본토에도 기회를 보아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서방, 특히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보증국들이었던 미국과 영국이 그 양해각서 약속 당사자였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르임 자치 공화국 침공을 막아내지 못 한 것에 그치지 않고 만약에 우크라이나 본토까지 위협받게 한다면 이것은 중대한 일이다. 그리고 그때는 동남부 우크라이나인들 가운데 러시아계 주민들은 다른 꿈을 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숫자가 크르임에는 못 미쳐서 분리 독립으로까지는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어디까지 허용하실지 두고 볼 일이다.

 



참, 한두 가지 적어 놓아야겠다. 2014년 3월 13일(목요일)에 오스트리아(AUSTRIA)의 빈(Vienna)에서 드므이뜨로 피르따쉬(Дмитро ФІРТАШ, Dmytro FIRTASH)란 우크라이나 재벌이 경찰에 체포되었다(http://www.bbc.com/news/world-africa-26565826).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의 반 정부 시위의 대상자였으며 2014년 2월 19일과 20일에 집중된 민간인 집단 학살 혐의로 인터폴의 수배를 받고 있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빅또르 야누꼬브이츠(Viktor YANUKOVYCH)의 돈줄로도 그동안 널리 알려져 왔다.

 

 

 

 


그리고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반 정부 시위에 이어 야당에서 여당이 되어 국회의 과반의석을 차지한 국회는 올렉싼드르 뚜르이츠놉(Oleksandr TURCHYNOV) 의장의 사회로 국회의원 면책특권(Parliamentary immunity)을 폐지하였다. 아마 2014년 2월 하순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언제라도 그 날짜와 결의 영상을 찾아보아야겠다. 

 



2014년 3월 19일(수요일)에 덧붙인다. 2014년 3월 16일(일요일)에 국민투표를 마친 크르임은 유권자 중 82퍼센트의 유권자가 참여하여 96퍼센트의 찬성율로 러시아 연방으로의 합병을 택했다. 그러자 그 다음 날인 2014년 3월 17일(월요일)에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인 뿌띤이 의회에 그 이후의 일을 알리고 2014년 3월 18일(화요일)에 상하원 의원들에게 연설한다(http://youtu.be/PDLwu4E35us). 그 자리에는 크르임에서 간 국회의장, 내각 총리, 세바스또뽈 특별시장이 참석해 열렬한 기립 박수를 받는다. 그 자리에서 뿌띤은 크르임은 러시아에 있어 중요한 곳으로 볼로드이므이르(Volodymyr) 공이 세례를 받은 곳으로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 기독교의 시작이 된 곳이라고 밝혔다.

 

 

 

 


내 생각에 이것은 역설적으로 몇 가지를 알린다. 첫째, 그가 말한 끄이브 루스(키예프 루시, Kievan Rus)는 우크라이나의 전신이다. 뿌띤이 끄이브 루스를 언급했으니 러시아나 크르임 타타르인들보다 우크라이나가 더 먼저 크르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둘째, 뿌띤이 크르임을 언급하며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기독교의 생성을 말함으로써 그가 러시아 기독교회를 위해 이 일을 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기독교는 그런 종교가 아니다. 뿌띤이나 뿌띤의 논리에 동의하는 분들은 신약 성경 사도행전 17장 26절과 27절의 말씀을 다시 읽어보시라. 하나님을 부인하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곧 소련의 해체는 고르바쵸프(M. GORBACHEV)가 무능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또 러시아 연방의 옐찐(B. YELTSIN) 대통령이 술김에 부다페스트에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싸인하여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존중하여 쳐들어오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이셨다. 기독교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십계명에는 다른 이들이나 다른 나라의 것을 탐내지 말고 또 거짓말을 하지 말며 살인을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번에 러시아 연방과 뿌띤 대통령은 이 세 가지를 다 행했다. 거짓말이나 탐내는 것은 증거가 필요 없이 온 세계가 다 아는 것이다. 살인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뿌띤이 직접 살인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군 최고 통수권자인 그의 결정 없이 2014년 3월 18일(화요일)에 크르임의 씸페로뽈의 우크라이나 군부대에서 러시아 군인(크르임 자체경비단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뒤에 러시아가 서 있음)들이 우크라이나 장교와 하사관을 죽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지난 2014년 2월 19일과 20일에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마이단 독립광장에서 야누꼬브이츠 대통령에 대항한 시민들을 진압하던 우크라이나 특수 경찰들 사이에서 러시아 경찰의 견장이 발견된다. 그 날은 우크라이나 특수 경찰 소속 저격수들이 시민들을 타겟 사격하여 80명 이상을 살인하던 때인데, 아무리 신사적으로 말해도 한 명 이상의 러시아 경찰이 우크라이나의 마이단 독립 광장에서 총을 들고 있었고 그가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사살했을 가능성이 아주 많다는 말이다. 물론 이 일은 확인이 필요하다. 셋째, 뿌띤이 연설 중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언급을 심히 많이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뿌띤의 연설을 들으며 오늘 분량의 이 소식을 쓰고 있다. 뿌띤의 속내는 우크라이나 본토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우크라이나에 관심을 두고 연설할 수 있겠는가? 러시아어를 막 배우는 사람이 그의 연설을 들으면 뿌띤이 무슨 우크라이나 대통령인줄 알겠다. 사실 그것은 뿌띤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열등감일지 모른다. 나는 러시아(RUSSIA)의 우크라이나(UKRAINE)에 대한 열등감을 내 블로그에 종종 이야기한 적이 있다. 덩치는 크지만 그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역사, 특히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러시아 정교회의 시작점인 우크라이나에 열등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크라이나가 걸릴 수밖에 없으리라. 우크라이나와 세계는 이 사실을 올바르게 알고 응대하여야 할 것이다. 

 



2014년 3월 18일(화요일), 러시아 연방 소속 상하원 의원들 앞에서 우크라이나 크르임에 대한 일로 연설을 마친 블라디미르 뿌띤(Vladimir PUTIN) 대통령은 잠시 퇴장하였다가 연설대가 치워지고 책상이 놓여져 있는 그 자리에 다시 크르임에서 간 볼로드이므이르 꼰스딴뜨이놉(Volodymyr KONSTANTYNOV) 크르임(Crimea) 공화국의 국회 의장, 쎄르히이 악쑈놉(Sergey AKSIONOV) 크르임 내각 총리, 올렉씨이 찰르이(Oleksiy CHALY) 쎄바스또뽈(Sevastopol) 특별시장과 함께 입장하여 그 많은 상하원 의원들이 보는 앞에서 크르임 공화국과 세바스또뽈 특별시의 책임 당사자인 그 세 사람과 함께 크르임의 러시아 연방으로의 합병 조약서에 서명한다(http://youtu.be/lmXBJlHfxv8). 이제 러시아 연방 국회의 비준만 받으면 우크라이나의 크르임 자치공화국은 러시아 연방의 크르임 공화국이 된다. 아니 지금도 충분히 러시아 연방의 영토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서방 국가들, 심지어 우리 대한민국 외교부까지 나서서 크르임은 우크라이나 영토라고 하지만 그것은 이미 뒤늦은 일이다. 그 일이 적법하든 비신사적이든 이미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크르임의 80퍼센트에 달하는 주민들이 찬성한 일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그 뒷 일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 본토 수호에 힘을 쓸 차례다.

 

 

 

 


크르임에서 살다가 끄이브(키예프)로 피신 와 계시는 우리 한국인들이나,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셔서 쉬고 계신 분들은 자신의 미래 일정을 정하셔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러시아 연방의 크르임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일터나 거주지를 우크라이나로 옮겨서 살 것인지를 말이다. 알다시피 러시아 연방에 속하게 되면 자유가 어느 정도 억압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삶이든지 일이든지 말이다. 그리고 크르임은 2014년 3월 17일(월요일)부터 우크라이나 화폐인 흐르이브냐가 아닌 러시아의 화폐인 루블을 통화 화폐로 정했다. 물론 당분간은 흐르이브냐도 쓴다지만 거리나 은행의 현금인출기에서 우크라이나의 흐르이브냐 돈이 안 나온다. 혹 크르임으로 다시 가실 분은 이것을 꼭 기억해 두시라.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언어를 무시하고 친 러시아 성향의 정책을 펴오다 전임 대통령부터 이야기되어 온 유럽연합(EC) 가입 일정을 취소하고 러시아 연방의 경제 질서로 회귀하려던 빅또르 야누꼬브이츠(Viktor YANUKOVYCH)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 반대하며 그의 퇴임을 요구하던 우크라이나 시민 시위대와 야당 의원들의 반 정부 시위가 2013년 11월 22일부터 시작되어 마침내 석 달 만인 2014년 2월 27일에 새 내각이 들어서며 마무리되었는데, 바로 그날 러시아 연방의 블라디미르 뿌띤(Vladimir PUTIN) 대통령이 전임자인 러시아 연방의 옐찐(B. YELTSIN)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었던 꾸츠마(L. KUCHMA) 대통령과 미국의 클린턴(B. CLINTON) 대통령, 영국의 메이저(J. MAJOR) 수상의 보증으로 헝가리(HUNGARY)의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 1994년 12월 5일에 우크라이나가 갖고 있던 핵무기들을 다 폐기하는 대신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정치적인 독립성을 보장하기로 약속하고 맺은 그 부다페스트 양해각서(Budapest Memorandum)를 어기고 러시아인종이 많이 사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크르임 자치공화국에 자신의 군대를 투입하여 크르임을 무력으로 장악하고 정치 일정을 펴오다 마침내 크르임 주민들의 국민투표를 거쳐 크르임(Crimea)을 러시아 연방에 합병하는 조약서에 2014년 3월 18일에 싸인을 하므로 20일 만에 소련이 해체된 후 처음으로 그 영토 가운데 일부를 획득하였다. 이 일로 신 냉전의 기류가 동유럽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 일을 뿌띤이 끝내야겠지만 그가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보았듯이 미국(USA)의 오바마(B. OBAMA) 정부는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못 한다. 그렇다면 유럽의 주요 나라들은 어떻게 외교적으로 응대할까?

 

한편 우크라이나의 앞으로의 정치 일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당장 우크라이나 정부는 동부 우크라이나인들을 다독이며 우크라이나 동남부 영토 방어에 힘을 쓸 것이다. 그리고 분리주의자들을 척결하는데 힘을 쏟을 것이다. 그리고 동부 우크라이나인들을 품기 위해 러시아어의 공용어화에 나설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는 이번의 반정부 시위나 러시아의 크르임 합병에서 나타난 비신사적인 세계 강국 러시아의 침략적인 일에 맞설 무기 가운데 가장 강력한 핵무기 제조 프로젝트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울 후보자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 무엇보다 러시아어의 공용어화를 다시 내세우며 동부 우크라이나인들의 마음도 달랠 수 있을 텐데, 만약 그런 식으로 이쪽과 저쪽의 생각을 두루뭉술하게 맞춰가려 한다면 내 생각으로는 우크라이나가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처럼 아예 완전히 반토막으로 분리될 수도 있으리라 본다. 그 이유는 이번 일로 보았듯이 거짓말과 비신사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다른 나라의 영토를 강탈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등 뒤에 힘있게 존재하는 한 러시아보다 훨씬 더 자유를 사랑하고 따뜻한 인품을 지닌 사람들의 나라인 우크라이나는 존재할 수 없고, 또 우크라이나어는 서부 우크라이나의 지역어로 그 존폐까지도 걱정해야 하는 언어로 남고 러시아어가 벨라루스(BELARUS)에서처럼 대부분의 우크라이나(UKRAINE)에서 사용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의 섭리로 우크라이나를 아예 나누어서 보존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 그 반대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크르임 강탈에 강하게 대항하여 우크라이나 민족성과 우크라이나어 강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우크라이나 전국에서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의무화하려 할 때 동부의 친 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국민들 가운데 일부가 또 러시아를 믿고 반 신사적이며 반 인륜적인 그들의 방식인 정치 깡패나 젊은이들을 동원하여 지역을 흔들고 피를 보며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하는 식으로 러시아의 간섭을 우크라이나에 끌어들이면 이번의 크르임 강탈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이 솔직한 지금의 내 심정이다. 그러면 결국 서부 우크라이나나 민족주의자들이 그에 대해 강하게 맞부딪치게 될 것이고, 결국 감정상 나라가 나눠지는 것이 서로 좋다고 판단할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일이 아예 다 생기지 않는 것이 좋을까?

 

어쨌거나 러시아 연방의 뿌띤 대통령이나 러시아 국민들이 그들의 교회의 전통만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이웃 나라를 존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세상 통치 방식과 그분의 섭리를 깨달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겠지! 러시아 선교사들의 일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 말은 이번 일을 계기로 옛 소련의 한 영토를 얻은 뿌띤이 자신감이나 거만함으로 외국 선교사들의 출입국을 좀 더 자유롭게 하여 복음 전파의 자유를 러시아에서 다시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감히 나는 바란다. 하나님은 이번에 러시아도 기억하시리라. 만약 이렇게 간다면 러시아는 세계의 3류 국가이자 깡패 국가로 낙인찍힐 것이며, 러시아어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문학 언어와 예술 언어로 인식되어 왔는데 이제는 점점 사양길에 접어들고 유엔(UN) 언어에서도 제외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양식 있는 사람들이 전 인구의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단 말인가? 이번 일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늘의 뜻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한 문단의 글을 쓰며 마친다. 러시아 연방의 상하원 국회는 크림공화국을 러시아 연방으로 받아들이는 법안에 찬성을 하였고, 뿌띤 대통령이 곧장 싸인을 하므로 일은 끝났다. 유엔에서 그것은 불법이라고 전체회의에서 결의하였지만 그것은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2014년 3월 24일에 크림에서 우크라이나 군대를 철수하는 법안에 우크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자인 뚜르이츠놉이 싸인하여 크림에 있던 우크라이나 군대는 철수하였다. 우크라이나가 비공식적으로 크림(Crimea)을 러시아에 뺏겼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이제 크림 반도는 러시아의 땅이다. 화폐도 러시아 화폐인 루블로 바꿨고, 시간대도 모스크바(Moscow)와 같은 시간대로 맞추기 위해 2 시간을 앞당겼다. 우크라이나 전신인 끄이브 루스가 다스렸고, 볼로드이므이르 대공이 세례를 받았으며, 나중에 타타르인들이 들어왔다가 그보다 후에 러시아 황국의 소유가 되었으나 현대 시기에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돌아왔던 크림을 러시아 연방의 뿌띤 정부가 교묘하게 강탈해 갔다.

 

 

  

2014년 3월 07일(금), 우크라이나 끄이브에서 고 창원(http://gohchangwon.tistory.com)

2014년 3월 29일(토), 우크라이나 끄이브에서 고 창원(http://gohchangwon.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