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3): 독신 여자 선교사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시라칼럼 (2013): 독신 여자 선교사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시라

Posted at 2013. 9. 19. 00:47 | Posted in 3. 천국/3.1. 하늘나라 펼쳐 내기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교회들에서는 독신 여자 선교사들이 결혼한 목사 선교사들보다 더 헌신적이어서 선교지에 그녀들이 더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다. 가정을 가진 남자 목사 선교사들이 아내를 배려하고 자녀들을 뒷바라지하는 시간에 독신 여자 선교사들은 자신과 시간을 모두 주를 위해 쓸 수 있다고 여기고 말이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보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독신 여성 선교사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실제적인 인내와 조율을 교회나 삶에서 배운 경험이 거의 없거나 부족하기에 쉽게 성내고 현지인들과 인격적으로 교감하지 못하는 실수를 자주 범한다. 그리고 자기 대에서 모든 일이 끝나기 때문에 후대를 위한 실제적인 안내 지침이나 신앙 전수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녀들이 먹고사는 일에 초연한 것 같아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사람간의 교제나 사랑이 부족하니 먹는 일이나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일에 그녀들이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짐작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경의 요약으로 교회가 피를 흘리며 지켜왔기에 신앙 선배들로부터 우리를 통해 후대로 흘러가야 할 교리에 대한 이해가 그녀들에게는 전혀 없고 교회 정치, 곧 당회, 노회, 총회의 운영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 그녀들 중 일부는 자기 제자들을 현지 교회나 다른 목사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목사로 만들고도 전도사인 그녀들이 목사가 된 현지 제자들을 목사로 대하지 않고 '선교사'라는 이름과 한국 교회의 후원금으로 괴상하게 통제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요즘은 아예 자신들을 목사로 만들어 주든지 아니면 예외적으로 선교지에서의 세례권을 허락해 달라고 그녀들은 계속 소리를 높인다.


이제 아내와 자녀를 둔 목사 선교사들에 대해 좀 이야기하련다. 먼저, 자녀에 대한 일인데, 자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아주 큰 차이를 빚는다. 자녀가 있어서 그들과 함께 하면서 얻게되는 목사 선교사의 유익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가장 먼저는 자녀들이 있기에 과중한 스트레스에도 마음에 기쁨을 얻고 평안하게 된다. 그리고 자녀들 때문에 목사 선교사들은 현지인들과 더 깊이 교제하게 된다. 가장 가까이는 자녀들의 학교 선생님들과 자녀들의 학교 친구들과 말이다. 셋째,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여서 자녀들과 거리를 거닐면 현지인들의 큰 관심을 받게도 된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나라일수록 그것은 더한데, 예를 들어, 태국 같은 곳에서는 뽀얗고 예쁜 한국 어린아이가 나타나면 그것이 곧 사람을 모으는 일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넷째, 아무리 선교사들이 말을 잘 하여도 어린 자녀들이 현지어를 뇌에 박으며 혀로 바로 굴려내는 식으로 익히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목사 선교사의 자녀들에게 뜻이 있으셔서 동일하게 목사로 부르시고 선교사로도 부르신다면 그 선교사 자녀들을 통한 선교지에서의 복음 전파는 이루 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목사인 아버지를 보고 자란 데다 완벽한 언어는 물론 같이 자란 현지 친구들을 통한 인적 자산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목사 선교사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내가 있다는 것은 남자가 되었다는 것이고, 날마다 소통해야 하는 여자를 늘 곁에 두고 날마다 수도사들보다 더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가정을 복음에 세우며 산다는 이야기이다. 솔직히 말해서 수도원에서 사는 탁발 수도사들보다 결혼해서 사는 남편들이나 아내들이 훨씬 더 믿음을 지키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목사 선교사들은 사람의 인격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일에 능하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에서 어린아이가 울거나 떠들면 독신 선교사들은 조용히 혼자 지내던 습관이 있어서 직접 나서서 자신의 평안을 위해서 상대방을 전혀 모르는 사이에도 그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거나 관리자에게 항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목사 선교사들은 그들을 견뎌내거나 아주 심하면 일단 말을 걸어 그들과 대화를 청하며 사정을 보고 어린이들을 복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유형은 그렇다는 것이다. 또 목사 선교사에게는 아내가 있어서 현지인들이 쉽게 접근한다. 독신 여자 선교사들에게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접근하지 못한다.

일이 이러하므로 우리 한국교회는 독신 여자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것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개혁파교회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과 품위를 삶과 교회에서 지켜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 공연히 독신 여자 전도사들을 선교사로 갑옷을 입혀 해외에 보내서 교리와 예의도 모르는 괴상한 투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여성 독신 선교사들이나 그런 선교사들을 파송한 교회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나는 실제적인 선교 현장에서의 독신 여자 선교사들의 삶에 대해 좀 말씀드렸다. 

 

그렇다고 성경적인 논리를 빼면 또 반론하려는 분들이 많을 듯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제시하며 마치려 한다. 사도행전 13장에는 안디옥교회의 다섯 명의 교사들, 곧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바울) 가운데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음이 나온다. 곧 선교사는 성경 교사인 목사여야 하고, 선교사는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사도행전 13: 1-5). 오늘날처럼 스포츠나 커피를 가르치는 일반 교인들을 잠시 훈련시켜서 '평신도 선교사'란 이름으로 세계에 내보내는 일도 재고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일반 성도들은 브리스길라나 아굴라처럼 목사를 도와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사도행전 18: 19, 26). 결론적으로 교회의 선교사는 목사여야 한다. 그래야 복음을 전해서 세례를 주고 예배와 가르침으로 교세를 키우고 장로를 세워서(디도서 1: 5-9) 교회를 다스리고 집사를 세워 교회 운영과 구제를 맡기고 목사후보생을 길러서 신학을 하게 한 후 목사로 세우고 또 노회도 조성하여 그 민족에게 복음이 끝없이 전해질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에 맞고 복음 전파를 통한 교회 설립과 운영에도 효과가 좋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선교가 복음 전파를 통한 교회와 노회 설립과 운영이 아니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2013년 9월 18일(수),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고 창원(http://GohChangwo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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