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중심한 서방 세계의 선교사들과 우리나라 초대 교회 스승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시작과 끝인 창조론(創造論, Doctrine of Creation)과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이 우리나라 교회에는 올바르게 전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먼저 바빙크의 책을 요약한 뻘콥(Louis Berkhof, 1873-1957)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가운데 종말론 부분은 천년기론(千年期論, Millennialism)을 따른 미국 프린스톤신학교와 남침례신학교 출신 박 형룡(朴亨龍, 1897-1978) 박사의 가르침으로 한국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산만한 종말 신앙을 갖게 되었다. 결코 우리가 천년기론을 받기 어려운 이유는 종말에 다시 성전이 세워지고 피의 제사가 복귀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헛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정통교회의 유산이 아니다. 





창조론은 그보다 좀 더 예민하다. 왜냐하면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인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 미국의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 1851-1921), 네덜란드의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 중 세계 개혁교회들이나 장로교회들에서 큰 신학자로 추앙받아 개혁교회 교의신학의 본류를 이루고 있는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Gereformeerde Dogmatiek; Reformed Dogmatics, http://www.heritagebooks.org/products/reformed-dogmatics-4-vols-bavinck.html) 4 권을 논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인 2011년에 우리나라 부흥과개혁사를 통해 헤르만 바빙크의 그 「개혁교의학」이 한국어로도 두툼하게 네 권으로 번역되어 한국 장로교회 목사들이나 신학교 교수들 사이에서 개혁신학의 진수를 이제 한국어로도 제대로 맛보게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http://www.rnrbook.com/front/productdetail.php?productcode=004000000000000100: 부흥과개혁사의 「개혁교의학」 전 4 권 책 소개 글,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7157: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이신 이 상웅 박사의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에 대한 호평). 




세계 교회들 가운데 언약사상(言約思想, The Covenant Theory)은 개혁교회만의 자산이다. 스위스의 쯔빙글리(Huldrych Zwingli or Ulrich Zwingli, 1484-1531)를 시작으로 스위스의 불링거(Heinrich Bullinger, 1504-1575)를 통해서 독일의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 1534-1583)나 올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 1536-1587)를 거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The Heidelberg Catechism)에 언약사상(The Covenant Theory)이 들어갔다. 또 불링거를 통해 영국까지 전해져 네덜란드의 꼭체유스(Johannes Coccejus, 1603-1669)에 의해 언약사상이 완성되기 전에 영국에도 그 사상이 섰다. 그리고 20세기 중반에 네덜란드의 헤르만 바빙크에 의해 은혜언약(The Covenant of Grace)으로 세워져 루이스 뻘콥의 조직신학에 들어가 박 형룡 박사를 통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진 하나님의 창조와 행위언약, 구속과 은혜언약 사상(개혁교의학 3권)은 거의 불가침의 영역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 개혁교회나 장로교회에서도 같은 일이다. 

그러나 헤르만 바빙크의 은혜언약과 행위언약은 논리적인 결함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달리 바빙크는 하나님의 인간 창조를 온전한 피조물이 아닌 시작점에 서있다고 보아 더 높은 영광의 자리로 갈 수도 있고 더 비참한 나락의 길로 떨어질 수도 있다며 하나님의 인간 창조를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상태로 불완전하게 만든다(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3권, 6부 타락한 상태의 세계). 창조주가 그분의 형상으로 인생을 만드셨는데 그것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라 보기 어렵다. 둘째, 행위언약의 출전 본문으로 그 언약 체결 시의 말씀이 아닌 한참 후대의 율법을 든다. 논리적인 서양인들을 아는 나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가 없다. 

네덜란드 개혁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곧은 길을 걸으며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활약했던 신학자인 헤르만 바빙크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나는 독일 튀빙겐대학(University of Tübingen, https://www.uni-tuebingen.de/en)에서 정한 20세기 100대 신학논문 저자들 중 한국인으로는 김 세윤과 박사와 같이 든 서 철원 박사의 가르침을 따른다. 코넬리우스 반틸(Cornelius Van Til, 1895-1987)에게 공부하고 네덜란드 복판에서 공부하여 종교개혁자들만 아니라 교부들의 원저와 성경 원전까지 인용하며 그들을 설득한 서 철원의 가르침이 헤르만 바빙크의 가르침보다 정통교회에 훨씬 더 부착한 진리라고 믿는다. <<개혁신학은 첫 언약을 행위언약으로 규정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설립된 언약을 은혜언약이라고 하여 둘을 대립시키나, 성경 계시의 개진에서 볼 때 첫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됨의 약정이고 은혜언약 혹은 새 언약은 첫 언약의 회복과 성취로 보는 것이 바르다......>>. 언약사상을 옳게 교정하려면 삼십 년쯤 전에 세상에 나왔다가 1996년에 총신대학출판부에서 다시 낸 서 철원 박사님의 「하나님의 구속경륜」이 아직도 유익하다.  




이 책을 지금도 시중에서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을 요약해놓은 '영적 분별력'의 글로 연결한다(http://blog.daum.net/kkho1105/18012). 또 서 철원 교수님이 개혁교회의 언약 사상을 교정하신 내용이 좀 나와있는 어느 인터넷 싸이트의 글 다섯 개도 연결해둔다("언약사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 : ①, ②, ③, ④, ⑤).



1. 영적 분별력의 서 철원의 「하나님의 구속경륜」 요약






2. 서 철원 교수의 "언약사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 : ①, ②, ③, ④, ⑤






이곳에 잠시 서 철원 박사님의 글을 인용한다. <<성경은 언약 관계로 시작하고(창 2: 16-17) 언약으로 진행하며(창 9: 8-17, 15: 7-18, 17: 2-21, 출 19-20, 삼하 7: 8-17 등) 언약 관계의 성취로 마친다(마 26: 26-29, 계 21: 3-7).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 언약체결이 자주 이루어졌다. 첫 언약체결과 구약의 모든 언약체결들은 다 신약의 새 언약체결에서 성취되었다(눅 22: 19-20, 막 14: 22-25). 하나님은 창조경륜을 가지셨다. 그것은 자기의 창조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가지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어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었다(계 21: 3-7, 고후 16-18, 레 26: 12, 렘 32: 38, 겔 37: 27, 렘 31: 33).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창 2: 15-17). 창세기 2장에 나타난 언약이 첫 언약이다. 이 언약은 첫 인류가 하나님의 백성 되기로 한 약정이다. 개혁신학만이 언약사상 체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언약개념을 성경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 언약 체계는 성경의 제시와 정반대된다. 개혁신학은 첫 언약을 행위언약으로 규정하였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기초하여 은혜언약을 세웠다. 행위언약은 선악과 계명과 모세의 율법을 결합하여 공식화되었다. 선악과 계명을 지키면 피조물 수준의 상태에서 더 상승하고 영생에 이른다고 공식화하였다. 계명을 지킨 공로로 사람은 영생에 이르며 상태가 앙양된다. 그리하여 모세의 율법을 지켜도 동일한 결과를 얻는 것으로 공식화하였다. 이런 언약의 이해는 20세기에 이르러 카알 발트에 의해서 인간의 앙양 곧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을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하는 신학에 이르는 기초를 놓았다.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체결하시므로 뜻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므로 생겨난 그릇된 신학 작업이었다. 그러므로 개혁신학이 제시하고 공식화한 언약개념에 대해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 한다.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의 체계를 하나님의 창조경륜과 성경적 제시에 근거하여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이 재검토로 첫 언약과 새 언약의 근본 의미를 성경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http://m.blog.daum.net/wnsladmlwkdakr0804/310?categoryId=59: 서 철원 "언약사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 ① [원본: http://cafe.daum.net/selck]).



구원 얻음에 인간의 행위를 덧붙인 구부러진 가르침은 도르트 신조(The Canons of Dort)를 생산해 낸 도르트회의(The Synod of Dort [1618-1619]) 때 네덜란드 최초의 대학인 레이덴대학(Leiden University)에서 가르쳤던 아르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60-1609) 교수를 따르던 알미니안주의자들에 의해 영국으로 들어가, 백성들만 아니라 교회도 자신이 다스린다는 수장령(首長令, Acts of Supremacy)을 선포한 영국 헨리 8세(King Henry VIII of England)의 왕실과 결탁하여 고교회(高敎會, High Anglican Church)를 세우고 웨슬레(John Wesley, 1703-1791)에 의해 더 강화되어 감리교회(Methodist Churches)를 이루었고, 이것이 미국의 신약 신학자인 샌더스(Ed Parish Sanders, 1937-    )나 영국의 신약 신학자이자 성공회 주교인 톰 롸이트(Nicholas Thomas [Tom] Wright, 1948-    )까지 이어져 아직도 성경의 가르침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오늘날 유행하는 그들의 '바울의 새 관점' (The New Perspective on Paul)은 그릇되었고 그 단초는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헤르만 바빙크가 제공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칼 발트(Karl Barth, 1886-1968)의 등장에도 헤르만 바빙크의 신학 체계가 원인이다. 유럽의 개혁교회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이 개혁교회 터전에 서있으면서도 발트의 가르침을 쉽게 수용하며 넘나드는 것은 다 그런 이유이다. 유럽의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종교개혁교회에 서서 교부들과 사도들을 지나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나아가 정통교회에 잇대어 살아야만 한다. 


<<이 책이 한글로 쓰여 세계 신학계의 논의에 개방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굳게 세우는데 이 책이 사용되어지기 바란다.>> (서 철원, 「하나님의 구속경륜」 서울: 총신대학출판부, 1996, 4쪽)는 서 철원 박사님의 아쉬움과 바람을 기억한다. 개혁신학의 언약사상의 물줄기를 성경에로 돌리는 작업은 아직 한국에서도 이상한 일로 흘겨보는 처지이고, 이 책을 번역하여 세계 신학계에 내놓은 서 철원 박사님의 제자나 독지가도 없는 형편이다. 바쁜 서 철원을 대신해 뜻있는 분들이 이 책을 영어나 세계 각국의 주요 언어로 번역하여 한국 교회가 세계 신학계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열면 좋겠다. 개혁신학연구원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교의신학(조직신학)을 강의하셨던 서 철원 박사님은 이미 현역에서 은퇴하셨지만 지금도 성경이나 여러 자료들을 1차 자료로 보시면서 정통교회의 신앙을 더 드러내거나 교정하며 가끔은 강의도 하고 계신다. 서 철원을 통하면 아시아의 한국 교회도 세계 교회를 널리 섬길 수 있다. 




2017년 1월 30일(월요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고 창원(http://GohChangwon.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