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會議)는 은혜스럽지 못한 일이다'는 오해가 예전부터 있어 왔다. 그래서 교회에서나 학교에서나 회의에는 정치적인 뜻을 둔 사람들이나 참석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신약성경, 사도행전 15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에게 직접 배웠던 사도들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었던 장로들이 골방에서 기도만 하지 않고 회의를 열고 모여 앉아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고 결정하였다(신약 성경, 사도행전 15: 4~16: 5). 따라서 회의는 어떤 이들의 생각처럼 쓸데없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어나가는 일이라 할 것이다. 

또, 회의는 민주주의의 결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에 이미 그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고 해야 바를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함으로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창조 세계를 지키고 다스리는 일에로 부름을 받은 것이 사람들이기에(구약 성경, 창세기 1: 28),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을지라도 자연스럽게 번성한 사람들이 신사적인 무리를 이루고 서로의 뜻을 내놓고 토론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찾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담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반역함으로 이 일은 어그러졌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고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성신을 부으심으로(신약 성경, 디도서 3: 6)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되었고, 그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모일 때에는 다들 자유함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신약 성경, 갈라디아서 3: 26~2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유익만을 내세우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돌아보라고 하셨고(신약 성경, 고린도전서 10: 23~24, 12: 25), 또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화평의 하나님이시니 모든 일들을 적당히 질서대로 하라고 하셨다(신약 성경, 고린도전서 14:33, 40). 따라서 오늘날에도 교회들이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회의는 여전히 필요한 것이다. 

천주교회, 곧 로마 카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가 아닌 우리 개혁 교회(Reformed Churches)의 가르침으로는 은혜는 자연이나 질서를 뛰어넘지 않고 자연이나 질서에 순복하는 것이며, 또 교황과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워서 전폭적으로 그 사람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한 성령을 받은 우리 모두가 자신들의 은사들로 서로를 돌아보아 섬기는 것이다(신약 성경, 빌립보서 2: 3~4). 이렇게 이해할 때 회의는 성령(성신)으로 자유한 성도들의 은혜스러운 교제나 사귐이 되고(신약 성경, 에베소서 4: 1~3), 성경을 잘 풀어서 조목화해 놓은 신앙고백서나 교리서들은 자유로운 회원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순종해야 할 유익한 규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회의로 모일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한 몸이 되어 한 성령을 받은 자들임을 알아 서로를 돌아보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토의하고 있는지 되물어야 할 것이다. 이 일은 회의하기 전에 따로 시간을 내서 예배를 한 시간 동안 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참석하는 회의의 목적이 성경에 비추어 바른가를 이해한 후 그 회의를 진행해 가는 절차법들이 하나님의 교회들을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회원들을 바르게 봉사하고 있는가를 또 유심히 생각할 수 있을 만한(신약 성경, 에베소서 5: 17) 신사적인 회원들의 수가 많아질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그 모임은 어떤 형태의 모임이든지 간에 자연스럽게 회원 상호간의 예의와 질서를 찾게 될 것이며 그 어느 누구도 성경과 법 위에 서서 다른 사람을 어거하며 군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럴 때 그 모임의 규칙이나 회의 진행법은 그 회의를 매끄럽게 운영하는 도구로써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럴 때에야 회원들은 성령의 자유함 속에서 자신들의 뜻을 부드럽게 발표하게 될 것이고 그 모임은 비로소 하늘의 일을 올바르고 힘차게 봉사하게 될 것이다(구약 성경, 시편 133: 1; 신약 성경, 에베소서 4: 1~3; 신약 성경, 로마서 8: 28). 

회의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 그 뒷일들까지도 다 맡아서 해야 하고, 자신들의 정치적인 속셈도 차려야 하기에 회의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성도 간의 화목을 도모하기보다는 그저 정한 시간 안에 회의를 끝낼 생각에만 바쁜 의장단이나, 또 회의에 열심히 참석은 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드러내지는 않고 그저 앉아있다가만 가는 회원들은 물론, '정치꾼들의 말 잔치인 회의에 참석하느니 혼자 조용히 기도나 하겠다'며 자기만의 성을 쌓아가는 회원들까지 다 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가 혼자서 살도록 창조하시지 않고 같이 어울려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니 말이다. 



2006년 9월 14일(목), 우크라이나 끄이브에서 고 창원(http://GohChangwon.tistory.com)



* 이 글은 내가 대한민국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인 지난 1995년 9월에 학보사의 요청을 받고 썼던 짧은 칼럼이지만, 당시 학보사의 담당 교수였던 문 아무개 목사님의 반대로 학보에는 등재되지 못했던 글임을 밝혀둔다. 또한 이 글을 컴퓨터에서 찾아서 나의 이 블로그에다 올린 다음 날인 2006년 9월 15일(금요일)에, 우리 교단 총회를 앞둔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교단의 인터넷 홈페이지의 '커뮤니티'의 '게시판'(http://www.gapck.org)에다 기록해 놓았음을 여기에 밝혀두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